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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죽음 마주하는 연습 있어야 평화롭게 마감 컨텐츠이미지 [ 등록일 : 2012-04-23 , 조회수 : 1,5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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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마주하는 연습 있어야 평화롭게 마감 2012.03.27 16:25 입력능행 스님 jungtoh7@hanmail.net 발행호수 : 1139 호 / 발행일 : 2012-03-28 봄비가 하루 종일 부슬거리며 땅을 적시던 날, 공사로 어수선한 마당에서 매화가 맑은 꽃망울 드러내며 향기를 흩뿌린다. 문득, 어머니 배에서 태어나 살아온 날들을 헤아려보니 50년이 넘는다. 그 세월 속에서 고통과 갈등, 번뇌는 쉼 없이 일어나고 사라져왔다. 하지만 언제나 파도처럼 일렁이는 죽음을 인식하고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은 그러한 고통과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이 돼주곤 한다.며칠 전 정토마을 공동체 안에 있는 마하보디명상심리대학원 학생들과 인도 다람살라에 다녀오는 길에 델리 근교 화장터에 들른 적이 있다. 입구에서부터 느껴지는 냄새에 속이 울렁거렸다. 화장터에는 죽은 사람의 몸이 몇 개의 나뭇가지 위에서 타고 있었고 그 옆으로 사람들이 시신을 강물에 띄우기 위해 서 있었다. 그 순간 시신의 팔이 밑으로 툭 떨어지는 것을 목격했다.‘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죽어서 모두 어디로 가는가? 죽음에 있어 빈부의 격차는 어떤 의미일까? 매순간 주어지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왜 행복하지 않을까?’타다 남은 시신들이 떠내려가는 강변에 서서 이런저런 망상을 하다 돌아서니 눈앞에 이런 글귀가 있었다.‘여기까지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저 혼자 가겠습니다.’멋진 말이었다. 혼자 씩씩하게 갈 수 있기 위해 평소 죽음과 친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니 몇 년 전 정토마을에 참꽃이 필 무렵 삶을 내려놓고 떠났던 보살님이 떠오른다.그분은 부산에서 작은 옷가게를 운영했다. 딸 하나를 두고 남편과도 원앙처럼 사이가 좋았던 40대 보살님이었다. 위암 말기 진단을 받은 후 1년 간은 살기 위해 노력했지만 어렵다는 것을 알고 정토마을에 입소해 마지막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남편은 가게를 접고 늘 아내의 그림자처럼 함께 했다. 옷 입혀주기, 산책하기, 죽 끓여주기, 책 읽어주기 등으로 하루를 보냈다. 가끔은 사람들에게 맡기고 쉬라고 해도 거사님은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할 뿐이었다.그러던 어느 날 온갖 야채를 썰고 있던 거사님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장사하며 바쁘게 사느라고 아내와 여행 한번 못해봤어요. 너무 미안하고 아쉬워요. 스님, 아내가 이렇게 죽고 나면 다시는 못 만나는 것 맞죠? 가장 힘든 것이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게 너무 힘들어요.”거사님은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했다. 그러면서도 아내를 위로하며 4개월 투병생활을 함께 했다. 날이 갈수록 말라가는 아내에게 옷을 입힐 때마다 손이 떨린다며 눈물을 삼키기도 했다. 하지만 거사님은 그렇게 눈물을 흘리다가도 아내 곁에 가면 금세 행복해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떠나기 5일전, 보살님은 남편에게 양해를 구했다.“저 마당 참꽃이 지기 전에 가면 안 될까? 당신 우리 계획했던 황토집 짓고 착한 아내 다시 만나 살면 어떨까? 나도 내 인생이 있으니 어서 갔다 다시 돌아와 건강한 몸으로 살고 싶은데, 어때 당신은? 당신에게 많이 미안하지만.”가만히 듣던 남편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괜찮아. 때때로 보고 싶고 그리울 것 같지만 당신이 간다면 보내줘야지. 하지만 당신 떠나고 나면 나도 어느 날 떠나게 되겠지. 당신은 내가 있어 좋겠지만 나는 어쩌지. 그래, 그러니까 좋은 아내를 다시 얻어야겠지.”나와 보살님 그리고 거사님은 한참동안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오전, 아내는 목욕하고 남편에게 기대 평화롭게 육신의 옷을 벗었다.보살님 부부를 보며 이별에 대한 연습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죽음에 대한 준비가 두려움과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보살님은 관세음보살을 염하는 것을 생활화했으며 다음 생을 이미 계획하고 있었다. 관세음보살이 자신을 정토로 인도할 것이라는 믿음이 견고했고 좋은 남편 만나 작은 가게지만 서로 온전히 사랑했기 때문에 보살님의 삶은 마지막까지 충만하고 평온했다.  그래서인지 떠나는 모습 또한 평화로워보였다. 마지막 순간을 지극한 충만 속에서 맞이하기 위해서는 죽음에서 달아날 것이 아니라 마주하고 그것을 준비하고 연습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 게시물은 정토마을님에 의해 2012-10-10 22:40:27 자료실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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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평온한 인생 마무리는 준비가 필요하다 컨텐츠이미지 [ 등록일 : 2012-04-23 , 조회수 : 1,5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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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인생 마무리는 준비가 필요하다 2012.03.14 09:19 입력능행 스님 jungtoh7@hanmail.net 발행호수 : 1137 호 / 발행일 : 2012-03-14 나는 작은 언덕 오르면 망망한 바다가 끝없이 펼쳐지던 남녘에서 태어났다. 그곳에서 나이가 같았던 남자아이와 함께 7살까지 한 동네에서 어울리며 자랐다. 3년 전, 소꿉친구였던 그 거사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40년만의 연락이어서 무척 반가웠다. 하지만 거사님은 아들이 완치가 어려운 병을 진단받았다며 힘들어했다. 당시 겨우 17살이던 거사님 아들은 폐로 전이된 암으로 인해 세 번의 큰 수술을 받는 등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그리고 3년의 시간이 흐른 며칠 전, 나는 거사님에게 문자 한통을 받았다.“스님, 갔습니다. 그 녀석이 가버렸습니다.”거사님은 아들을 잃은 슬픔으로 흐느끼고 있었다. 아들은 3년 동안 몸과 마음을 괴롭혔던 온갖 고통을 이승에 놓아두고 늙은 할머니와 부모님 곁을 훌쩍 떠나버렸다고 했다. 꼭 살아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아들의 죽음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거사님이 땅바닥에 주저앉아 문자를 보내는 모습이 눈에 선해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고생만 하고 떠난 아이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지켜주고 싶었다.영안실에 도착하니 아이의 어머니는 허수아비처럼 흔들거리다 혼절해버렸고 아버지는 땅을 치다 자식을 끌어안고 관속에 함께 엎어져 있었다. 가버린 사람이 남긴 고통을 남은 사람들이 떠안고 있었다. 오랫동안 많은 죽음을 보아왔음에도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그 모습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거사님 아들에게 다가갔다. 아들은 편안한 모습이 아니었다. 전신으로 암이 전이돼 더 이상 가망 없었던 아이에게 치료를 강행한 흔적이 여기저기 보였다. 너무 많이 부어버린 아이의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입술에는 인공호흡기를 달았던 듯, 터지고 피가 난 흔적이 역력했다. 죽는 순간까지 느꼈을 그 애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 병원에도 호스피스 병동은 있었는데, 왜 꼭 이래야만 했을까 싶었다.안타까움과 함께 현대의학의 과잉치료에 대한 거부감이 일었다. 하지만 의사와 병원 그리고 보호자의 입장을 너무나 잘 알기에 한 마디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거사님은 고통스럽게 떠난 아들의 모습을 믿을 수 없었던지 분노를 터뜨렸다.“내 아들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한겁니까.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믿을 수가 없어요. 내 아들 살려주세요. 내 아들 살려달라고요.”입관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그 순간, 거사님이 느끼고 있을 고통이 비수처럼 가슴을 찔렀다. 거사님은 아들을 붙잡고 울부짖었다.“모진 것아. 이 아버지에게 한마디 말이라도 하고 가지. 더도 말고 딱 한마디만.”아들이 죽으리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던 거사님 부부는 호스피스 병동이 아닌 중환자실에서 아이를 돌봐왔다. 하지만 치료는 쉽지 않았고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 아픈 아이도, 지켜보는 부모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부모에게 태산 같은 고통과 상처만을 남기고 가버린 아들. 그는 결국 아무 말 없이 관속에 들어갔다. 그리고 다음날 한줌 재가 되어 처음 태어났을 때처럼 부모가슴에 안겼다. 아들을 품에 안은 부모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릴 뿐, 어떤 것도 해줄 수가 없다.사람은 다양한 경험 속에서 살아간다. 그 중에서도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히 가족 중에 질병으로 죽음이 예측 될 때는 마지막 여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면밀히 준비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나아가 전문가들에게 도움을 청한다면 떠나는 사람과 남은 사람에게 더욱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대개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생명이 완전히 멈출 때까지 삶의 끈을 놓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헛된 희망으로 얼마 남지 않은 시간마저 의미 없이 날려버리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행복한 죽음, 평온한 마무리에서 멀어지고 만다. 그렇게 된다면 결국 죽음은 준비 없는 죽음으로 끝나버린다. 죽음 앞에 서기 전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언젠가는 꼭 마주치게 되는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생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옮겨야한다. 그럴 때 우리의 마지막 삶이 존엄하고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게시물은 정토마을님에 의해 2012-10-10 22:39:37 자료실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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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행복한 작별 속에 따뜻한 삶 녹아 있다 컨텐츠이미지 [ 등록일 : 2012-04-23 , 조회수 : 1,7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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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작별 속에 따뜻한 삶 녹아 있다 2012.02.28 15:22 입력능행 스님 jungtoh7@hanmail.net 발행호수 : 1135 호 / 발행일 : 2012-02-29 2월의 끝자락, 창밖에는 눈과 비가 나란히 내린다. 그 모습이 겨울과 봄의 징검다리 같기도 하고 삶과 죽음의 모습 같기도 하다. 며칠 전 나는 도반 아버님의 마지막 여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어느 늦은 시간, 언제나 정토마을과 함께했으며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도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는 자신의 아버님이 임종했으며 스님의 임종기도가 꼭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시골마을 어귀 느티나무 사이로 자리 잡은 집은 소박한 충만이 배어있었다. 작은방, 고즈넉이 내리는 고요 속에서 참으로 맑아 보이는 어르신을 만났다. 중풍으로 3년간 자리에 누워있던 아버님을 2남 1녀 자식들과 아내가 돌봤다고 했다. 돌아가신 분의 얼굴에는 인자함이 흐르고 있었다. 자식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빈 몸에서는 자애가 흘렀다. 오랜만에 보는 편안한 임종의 모습이었다.7남매 가운데 장남으로 부모님 모시고 형제들은 키우며 한평생 살아온 어르신은 어느 날 중풍으로 쓰러졌다고 한다. 6개월을 병원에 입원했으며 그 이후에는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자식의 간병 속에 약 3년간 투병생활을 이어왔다고 했다. 일평생 삶을 일궈낸 정든 고향집에서 다정한 아내의 간병을 받으며 투병했을 방에는 전자동 침대와 눈높이에 맞는 TV가 단아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군불을 지펴 따스함이 올라오는 온돌방에 고요함이 흐르는 가운데 임종기도를 시작했다.자신의 집에서 가족들의 돌봄으로 평화로운 죽음의 여정을 걸을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문 것이 오늘날 현실이다. 하지만 그분은 가족의 보살핌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일생을 어질고 선하게 살아왔다는 그분 삶의 향기가 지금 여기에서 피어나고 있는 것일까? 도반의 아버님은 그날 오후 3시경 임종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방에서 자식들과 아내 그리고 손자손녀들과 넉넉히 하룻밤을 더 지내고 다음날 아침 병원 영안실로 떠났다. 집에서 편안히 누워 임종기도를 받았으며 아들들은 목욕물을 데워 몸을 닦았다. 굽어진 다리는 따뜻한 물수건으로 폈으며 생명이 떠난 빈 몸이지만 부드러운 잠옷으로 갈아입혔다.“아버님 옷 갈아 입혀드리겠습니다.”“아버님 목욕시켜드리겠습니다.”이어 자식들은 바다같이 넓고 깊은 은혜를 찬탄하는 노래공양을 올렸다. 당신에게 얼마나 감사하고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절하며 고백하는 시간도 가졌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아버님과 작별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이 얼마나 고귀하고 아름다운 순간인가? 따스한 온기 오르는 방에서 고운 이불 덮고 편히 누워계시던 그분은 자식들의 마지막 존경과 사랑을 가슴으로 느끼고 있지는 않았을까.그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는 시간들을 보내고 그 어르신은 다음날 아침, 자식들과 함께 병원 영안실로 떠났다. 호스피스 교육을 받은 전문가들로 구성된 스님들이 입관 의식을 담당했으며 함께 공부하는 도반들은 관속 아버님을 아름다운 꽃으로 장엄했다. 그리고 그분은 다음날 꽃상여 타고 고향 뒷동산의 한줌 흙으로 그렇게 돌아갔다. 임종기도의식을 진행하는 내 가슴은 너무나 따듯했고 감사한 마음이 가득했다.그 어르신은 과연 어떻게 사셨기에 이렇게 고요하고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 아침나절 목욕하고 오후에 낮잠 자듯 그렇게 편안하게 떠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그의 자녀들은 마지막까지 침착하고 자연스럽게 정성을 다할 수 있었을까?요즘 사람들은 아무리 소중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도 온전한 작별의 정을 나눌 시간적·정신적 여유를 갖지 못한다. 대다수 사람들은 숨을 거둠과 동시에 영안실로 가야한다. 병원에서 태어나서 병원에서 앓다가 병원에서 죽어 사라지고 마는 것이 우리네 삶의 여정 아닌가. 하지만 우리는 한번쯤은 가족들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서 맞는 임종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정해진 순서에 따라 틀에 박힌 형식으로 삶을 마무리해야 한다면 우리가 언젠가는 꼭 마주치게 되는 죽음은 도대체 어떤 의미로 남게 되는 것일까. 떠나는 사람과 남은 가족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임종에 대해 생각해본다. 죽음에는 남녀노소는 물론 선후의 차별도 없다. 내가 나의 죽음에 대해 깊이 숙고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나는 어디서 어떻게 이 세상을 마무리하고 떠나가야 하는 걸까. 당신이 살아온 삶처럼 따뜻했던 도반 아버님의 마지막을 기억하며 그분의 극락왕생을 빈다.  [이 게시물은 정토마을님에 의해 2012-10-10 22:39:37 자료실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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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가슴으로 죽음 이해할 때 삶의 안목 생겨 컨텐츠이미지 [ 등록일 : 2012-04-23 , 조회수 : 1,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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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죽음 이해할 때 삶의 안목 생겨 2012.02.14 10:32 입력능행 스님 jungtoh7@hanmail.net 발행호수 : 1133 호 / 발행일 : 2012-02-15 ▲능행 스님의 호스피스 병동에서 ‘태어나면 죽음이 있거늘 / 그 누가 죽지 않을 수 있겠느냐’ (‘법구유경’)7년 전, 쑥이 파릇하게 돋아나던 이른 삼월의 어느 날 도반이 찾아왔다. 그는 참 강직하고 반듯해 대나무 향기를 느끼게 했다. 하지만 그날 창백한 얼굴에 억지로 웃음을 짓는 모습을 보며 불안한 느낌이 스쳐지나갔다. 한참을 서로 바라만보다 도반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말이 되지 않는 이 상황에 대해 말을 해야겠는데 도무지 말문이 열리지 않는다.”나에게 찾아 올 무렵 그는 이미 3곳의 대학병원을 돌고 난 후였으며 암이 난소에서 복부로 전이돼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의사는 약 3개월정도의 생존기간을 예측했다. 그는 출가해 정진한지 15년, 지금까지 겨우 43년을 살아왔을 뿐이었다. 도반은 내가 생각났지만 정토마을에 가면 정말 죽을 것 같아 두려웠다고 했다.“말이 되질 않아. 어처구니가 없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나보고 죽으라고. 나 아직 그런 것 생각 안 해봤어. 이게 말이 되냐고. 왜! 무엇 때문에!”도반의 절규가 내안에서 먹구름과 함께 불어대는 태풍처럼 몰아쳤다. 내 삶에서 수시로 마주치는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들. 이런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내 앞에 나타나면 나는 생각이 끊어지고 말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곤 한다. 타인의 죽음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죽음 앞에 서게 되는 많은 사람들과 그의 가족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그랬던 것 같다.“왜 내가 죽어야 합니까.”, “왜 내 가족이 죽어야 합니까”라고 절규할 때마다 눈물로 대답을 대신하는 내가 있을 뿐, 죽음의 연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인연화합으로 생겨난 것은 인연에 의해 존재하다 인연 다하면 흩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알아들을 수 있을까? 그저 죽음이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일 뿐이라고 설명하면 이해할까?몸에서 나타나는 증상으로 죽음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소중히 살아내는 도반. 죽을 시간만 기다릴 수는 없다며 구녀산을 헤매고 다니던 도반은 어느 날 쑥을 캐기 위해 논둑에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왔다.“파리한 쑥의 생명이 너무나도 크게 느껴졌어. 사람 목숨이나 작은 풀 한포기 목숨이나 가치가 똑같아. 나는 어쩌다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나 그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고 살았을까?”도반은 구녀산 숲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차 한 잔과 함께 들려주곤 했다. 또 틈틈이 병실에 올라가 환자들의 마지막을 함께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죽음을 준비 하는 것 같았다.“왜 죽어야 하는 걸까? 벌써 죽는다는 것이 말이 되는 걸까?”“도반님, 내가 만난 죽음은 늘 이유가 없었어. 죽음에는 시절과 이유 그리고 차별 또한 없더란 말이지. 흩어질 인연 오면 그저 다양한 업연대로 흩어지는 것, 그저 그것일 뿐이더라.”하지만 지금도 내 가슴에는 답답함이 남아있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죽음이라는 현상을 바르게 인식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일까?도반과 나는 정토마을 위로 쏟아지는 별빛 아래 그네에 앉아 바다에 출렁이는 파도처럼 늘 죽음이 출렁이는 호스피스 현장에서 보고 느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나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다 함께 ‘법성게’를 구성지게 불렀던 그날을 잊을 수 없다.법의성품 원융하여 두모양이 본래없고?(法性圓融無二相)모든 법이 부동하여 본래부터 고요하네 (諸法不動本來寂)“열심히 좌복에 앉아 화두 들고 있으면 중노릇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 했는데”하며 자신의 죽음에 대한 아쉬움을 허허로운 웃음으로 표현하던 도반. 그는 13개월을 더 살고 다음해 벚꽃 흩어질 무렵 몸도 함께 흩어져 버렸다. 차 잎을 꺾어 담아 그가 떠난 빈 몸을 덮어봤지만 그저 그것일 뿐.“도반님! 죽음에는 이유가 없더라. 생이 있기에 죽음이 있을 뿐. 죽음은 단호하고 절대적이지만 사람들은 그저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어. 인간은 모든 것을 결정할 권리를 가졌지만 죽음에서 살아날 권리는 가지지 못했다는 진실을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는 게지.” 죽어야할 날을 받아놓고 하루하루 사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의 심정을 지금 이 순간에도 가슴으로 헤아려 보면 먹먹함이 일어난다. 우리는 모두가 죽어야 할 그 날을 향해 걷고 뛰며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명철하게 아는 얼마나 될까. 삶을 대하는 안목은 죽음을 가슴으로 인식할 때 달라진다. [이 게시물은 정토마을님에 의해 2012-10-10 22:39:37 자료실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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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모든 순간은 삶의 마지막 순간과 같다 컨텐츠이미지 [ 등록일 : 2012-04-19 , 조회수 : 1,9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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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순간은 삶의 마지막 순간과 같다 2012.01.31 09:39 입력능행 스님 jungtoh7@hanmail.net 발행호수 : 1131 호 / 발행일 : 2012-01-25 ▲능행 스님의 호스피스 병동에서파세나디왕은 부처님을 찾아와서 왕으로서 해야 할 일과 세속적인 분주함을 이야기했다. 이에 부처님은 왕에게 물었다.“대왕님,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늙음과 죽음이 대왕님을 덮치고 있습니다. 늙음과 죽음이 덮치고 있는데 무엇을 해야 합니까?”“부처님, 늙음과 죽음이 덮칠 때에 해야 할 일은 담마에 따라 사는 것, 올바르게 사는 것, 착한 일을 하고 공덕을 쌓는 것 이외에 다른 무엇이 있겠습니까?” (쌍윳따 니까야: 3 꼬살라 쌍윳따 3:5)충북 초정약수 근교에 자리 잡은 정토마을은 겨울이 되면 눈이 허리만큼 내리곤 했다. 올해도 불을 끌 수 없는 환자들의 아픔마음을 포근히 안아줄 하얀 눈을 기다려 본다.몇 년 전 눈이 아주 많이 내리던 설날, 마지막 제사를 올리고 이 세상을 떠나겠다며 시계바늘에 눈을 떼지 못하시던 거사님. 중환자실 병상 링거대 위에 말끔히 세탁된 신사복과 넥타이를 걸어놓고 한해의 마지막 그믐날 밤에 이틀만 더 살게 해달라고 몸부림치던 거사님 기억이 언 땅에 내리는 하얀 눈과 함께 떠오른다.환자는 말간 눈으로 몇 번이고 되물었다.“스님, 설날이 언제죠?”“낼 아침입니다.”“부모님 일찍 가버리시고 10년 전에는 아내도 떠나고, 지금까지 두 아이들과 함께 사는 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아직까지 부모님 산소에 한번 가 뵌 적이 없는 불효자입니다. 죽음이 이렇게도 빨리 올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저 두 아이들 어쩝니까? 제가 연휴에 떠나면 저 아이들이 제 시신을 가지고 둘이서 어떻게 합니까. 누가 정월 명절에 초상집에 오겠어요. 스님 이틀만 더 목숨을 부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딱 하루 이틀이면 되는데, 더도 말구요 딱 이틀만요. 부처님. 제 목숨을 이틀만 더 살려 주시면 더 바라지 않겠습니다.”거사님의 애절한 눈물과 함께 한해의 마지막 그믐밤이 깊어갔다.“아내도 위암으로 떠났고 부모님들도 힘들게 떠나서 제사 때마다 ‘반야심경’과 ‘법성게’를 읽어드리면 제 마음이 아주 편안해지곤 했어요. 스님. 정신을 또렷이 하려고 해도 눈꺼풀이 내려앉아요. 애들이 아직 어린데 아내가 걱정할 것 같아요.”그믐밤 깊은 어둠속에 하얀 눈은 내려 정토마을 마당을 덮기 시작했다. 거사님의 딸들이 음식을 만들어 아버지에게 검사를 받는다. 흐뭇한 눈으로 응답해 주시던 거사님은 창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눈을 바라보는 거사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스님, 눈이 오네요. 밤에 내리는 눈이 참 곱네요. 저는 눈이 저렇게 하얗고 곱다는 생각을 못해보고 살았던 것 같아요.”날 바라보는 그 눈빛이 너무나 애절하고 간곡해 가슴이 미어졌다. 밤은 깊어가고 거사님의 의식은 점점 꺼져가고 있었다. 이런저런 노력을 해보지만 희미하게 꺼져가는 목숨을 어떻게 붙잡을 수 있을까.이제갓 스물을 넘긴 두 딸들이 초초하고 불안한 와중에도 조부모와 어머니에게 올릴 제사음식을 해놓고 아버지 곁에서 아침을 기다렸다. 링거대 위에 달랑거리는 양복도 주인을 기다리며 아침을 맞았다.새벽 5시. 정신이 더욱 희미해져가고 아침 7시 제사를 법당에서 지내야 하는데 양복의 주인이 일어나지를 못한다. 딸아이가 아빠에게 “아빠 우리가 대신 제사 지낼까?”하고 묻자 누워서 눈도 뜰 수없는 아빠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며 딸들을 법당으로 보낸다. 아버지 없는 제사를 지내고 온 두 딸과 떠나지 못하는 아버지가 서로를 안고 우는 설날 아침은 나에게도 참 가슴 저미는 시간이었다.거사님은 간신히 설날을 보내고 다음날 오후에 이 세상을 떠났다. 두고 가는 두 딸들이 자신의 장례식을 어찌 하지 못해 마음고생 할까 한밤을 더 살고 떠나던 거사님 모습이 오늘밤 하얀 눈과 함께 다가온다.거사님의 애절함을 통해 나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대해 깊이 숙고했던 기억이 난다. 몸과 마음이 건강할 때 무엇이라도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것. 시간은 늘 있는 게 아니라 언제든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더욱 열심히 사는 오늘의 내가 있다.  우리의 삶에 주어지는 시간은 오직 지금 바로 이 순간일 뿐이다.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것 중에 하나가 ‘다음 시간’이라는 단어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임진년 새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시간들이 충만함으로 채워지길 기도한다.  [이 게시물은 정토마을님에 의해 2012-10-10 22:39:37 자료실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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