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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무간지옥 헤매며 떠난 자식 놓지 못한 보살님 컨텐츠이미지 [ 등록일 : 2012-09-21 , 조회수 : 1,7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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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간지옥 헤매며 떠난 자식 놓지 못한 보살님 2012.09.19 15:42 입력능행 스님 jungtoh7@hanmail.net 발행호수 : 1162 호 / 발행일 : 2012-09-19 매미가 떠난 숲속은 고요하다. 들판의 나락이 하나 둘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계절의 변화가 성큼 다가왔음을 느낀다. 텃밭에 심은 고추가 발갛게 익어가던 어제 오후, 딸을 먼저 떠나보낸 보살님이 찾아왔다. 악성 종양으로 6년을 투병하던 연희는 2년 전, 16세의 나이로 가족 곁을 떠났다. 보살님은 지치고 메마른 얼굴로 언양 자재병원 현장에 나타났다.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그 모습에 내 마음도 함께 무너질 듯 내려앉았다.“아침에 딸아이를 묻은 자리에 갔지만 가슴이 먹먹해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49재를 치른 절에도 가봤지만 서글프긴 마찬가지였고요. 우리 연희 떠나기 전에 스님께서 임종기도 해주셨잖아요. 스님 보려고 이렇게 왔어요.”보살님은 마르지 않는 눈물에 흠뻑 젖은 솜뭉치 같은 몸으로 부산에서 언양까지 찾아왔다. 가슴에 묻어둔 아픔들을 쏟아내는 어깨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문득 연희를 처음 만나던 순간이 생각났다.2년 전 어느 날, 임상사목과정(CPE)을 함께 공부했던 수녀님이 부탁이 있다며 찾아왔다. 불자가족이 있는데 아이 임종이 가까워지고 있고 그 가족들은 깊은 절망 속에 있다고 했다. 곧장 달려간 병원에서 연희를 만날 수 있었다. 연희는 이미 10살에 악성 종양으로 두 번씩이나 수술을 한 상태였다. 입·퇴원이 반복된 6년 세월 동안 보살님은 아이를 극진히 보살폈다. 생계비와 병원비는 남편이 작은 회사를 다니며 버는 돈으로 충당했다. 하루가 다르게 몸과 마음이 약해지는 딸에게 부부는 언제나 든든한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했다.하지만 죽어가는 자식을 지켜봐야 하는 부부 심정은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죽어서야 끝이 날 것 같은 고통의 무게가 가족을 짓눌렀다. 아이와 함께 삶을 끝내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마다 옥죄어오는 죄책감으로 부부는 더욱 힘들어했다. 아이가 웃는 순간에는 극락에 있다가 아이가 열이 나면 지옥으로 떨어지는 삶을 6년간 살아냈다. 아이가 죽음을 얼마나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던지, 곧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주지도 못했다고 한다. 보살님은 지금에서야 생각하니 그것이 가슴을 너무 아프게 한다며 한숨을 쉬었다.불자였지만 필요할 때 사찰을 찾아 절을 하고 마음에 평안을 찾던 것이 다였다는 보살님. 그래서 딸이 아플 때 어느 스님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다는 보살님은 병원에서 사목을 하는 수녀님의 보살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수녀님은 아이와 함께 죽고 싶어 했던 보살님의 마음을 다잡아주곤 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1인 병실, 그 적막한 공간에서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는 것은 너무나도 허기지고 외로운 일이었다. 눈앞에서 자식이 죽어가고 있기에 따뜻한 밥 한 그릇 허리 펴고 먹을 수 없는 숨 막히는 시간이 지나갔다. 점점 앙상해지는 딸을 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는 말을 몇 번이고 되뇌는 보살님을 보며 내 마음은 더욱 답답해졌다.‘잘 가거라. 엄마는 널 많이 사랑한다’. 보살님은 마지막 순간에 꼭 이 말을 딸에게 속삭여 주리라 다짐했다고 한다. 하지만 평소 병실을 떠날 수 없기에 밥 대신 물로 배를 채워야 했고 기력을 모두 쇠진해버린 보살님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딸을 떠나보내야 했다. 그것이 너무 가슴 아프고, 저리고, 슬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보살님은 무너져 내릴 듯 눈물을 쏟아냈다.자식이 죽어간다는 것은 부모에게는 무간지옥이다. 그 고통의 무게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아픈 아이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고 부모의 고통 역시 깊어지고 있다. 우리 모두는 누구나 불치의 질병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 채 살아가야 한다. 죽어가는 자식을 안고 6년 세월 고통의 늪 속에서 허우적거렸고 지금까지 아이를 찾고 있는 보살님을 부처님께서 자애와 연민으로 보살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능행 스님 정토마을 이사장 jungtoh7@hanmail.net [이 게시물은 정토마을님에 의해 2012-10-10 22:40:27 자료실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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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담쟁이 잎에서 엿본 희망의 메시지 컨텐츠이미지 [ 등록일 : 2012-09-13 , 조회수 : 1,6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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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 잎에서 엿본 희망의 메시지 2012.09.04 14:49 입력능행 스님 jungtoh7@hanmail.net 발행호수 : 1160 호 / 발행일 : 2012-09-05 “벽돌담의 존재 이유를 기억하세요. 그것은 우리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 어떤 것을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 것인지 보여줄 기회를 주기 위해 그곳에 존재하는 것입니다.”췌장암을 선고받고 6개월 시한부 삶을 살던 랜디 포시(Randy Pausch) 카네기멜론대 교수가 강단에 섰다. 그는 학교를 떠나기 전 동료 교수들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마지막 강의’에서 ‘벽 이론(The Brick Walls Theory)’을 말한다.“벽돌담이 있어 우리가 최선을 다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그것은 어린 시절에 품었던 꿈의 달성을 원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분리시킵니다. 결코 중단하지 마십시오. 가장 좋은 황금은 쓰레기 더미의 가장 밑바닥에 존재합니다.”자재병원 건축현장에서 랜디 포시 교수의 마지막 말을 되새겨본다. 2011년 5월, 공사비 20%를 준비해 자재병원 건립불사를 시작했다. 2012년 8월 현재 공사는 60% 진행됐으나 남은 과정이 마치 성벽처럼 까마득하기만 하다. 꿈을 이루기 위해 넘어야할 장애물인 벽. 내가 저 벽을 넘을 수 있을까. 중생들이 고통과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내가 얼마만큼 원하는지, 우주는 알고 싶어 하는 걸까?내 능력으로는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망연자실 주저앉아 버리고 싶은 이 때, 분연히 내 손을 잡고 일어나 벽을 오르는 담쟁이 잎이 하나 있다. 절망의 벽 앞에서 무너지려고 하는 순간 희망을 노래하며 날 일으켜주는 힘. 편지에서 작은 동전까지, 웃음을 담아 보내주시는 후원자들의 마음이 담쟁이 잎이 되고 넝쿨이 돼 내 손을 잡아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담쟁이 잎들이 존재했기에 12년 동안 준비해온 자재병원을 60%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 남은 40% 공정은 넘어야 할 벽이다.‘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중략)…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를 읽으며 담쟁이 잎은 절망의 벽을 결코 뛰어넘으려 하지 않고 천천히 기어 올라간다는 것을 알았다. 담쟁이는 흙 한 톨도, 물 한 방울도 없는 담에서 살면서도 저렇게 푸르구나. 서두르지 않고 조급해하지 않으며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며 벽을 오르는구나. 담쟁이가 담을 붙잡고 이파리를 푸르게 만드는 것처럼 나의 간절한 서원은 후원자인 당신의 손을 잡고 말없이 담을 넘어갈 것이다.3주전 폐암 말기에 임종을 며칠 앞둔 57세 거사님이 가족과 함께 언양 자재병원 건축 현장에 왔다. 거사님은 14개월을 투병했으며 삶의 끝을 준비하고 있었다. 거사님이 바싹 마른 손으로 내 손을 잡았다.“스님. 많이 힘드시죠. 병원 만든다고 밤낮없이 뛰어다니실 스님 모습 눈에 선해요.”나를 바라보는 거사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괜찮다고 말하는 내 가슴이 먹먹해지기 시작했다.“그렇게 힘든 몸으로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어요?”“세상에 나만 힘든 줄 알았어요. 담배도 많이 피우고 술도 많이 마셨죠. 그러다보니 이렇게 병이 들었네요. 그런데 이제 와서 주변을 둘러보니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많은 거예요. 사방천지가 병원이고 또 환자고. 저는 그 중 한사람일 뿐이고요. 3년 전 스님 책을 읽고 후원을 시작했어요. 늦었지만 죽기 전에 스님을 꼭 만나고 싶었습니다.”그리고 작은 힘이라도 되고 싶다며 하얀 봉투를 내 손에 꼭 쥐어주었다. 거사님은 스님 서원 꼭 이루라는 부탁과 함께 건축현장을 떠났다. 아쉬움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잡아 주시던 거사님은 8일 뒤 세상을 떠났다. 담쟁이 잎이 되어 내 손을 잡아줬던 거사님 영전에 극락왕생을 빌어 올린다. 수없이 많은 푸른 담쟁이 잎. 당신이 곧 이 세상의 희망이다.능행 스님 정토마을 이사장 [이 게시물은 정토마을님에 의해 2012-10-10 22:40:27 자료실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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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서방정토를 꿈꾸며 삶을 마감하신 거사님 컨텐츠이미지 [ 등록일 : 2012-09-13 , 조회수 : 1,4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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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정토를 꿈꾸며 삶을 마감하신 거사님 2012.08.21 15:07 입력 발행호수 : 1158 호 / 발행일 : 2012-08-22 한 달 전, 말기 위암으로 1년 정도 투병하던 거사님이 바싹 마른 몸을 이끌고 언양을 방문했다. 병원이 얼마나 지어졌는지 알고 싶어 왔다고 했다. 5년 전부터 매월 2만원을 후원하던 중 삶이 얼마 남은 것 같지 않다며 3시간을 달려오셨던 것이다. 가슴이 먹먹했다. 이놈의 병원은 왜 이렇게 빨리 지어지지 않는 걸까. 스스로를 자책하니 땅이 꺼질 듯 한숨이 나왔다.“비록 눕지 못할 곳이지만 훗날 나 같은 사람들이 편히 사용했으면 좋겠어요.”나를 향해 환히 웃음 짓던 거사님. 물 한모금도 삼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거사님과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스님, 저는 이제 더 이상 태어나고 싶지 않습니다. 이 한세상 너무나 힘들고 지쳐서 이제는 좀 편안히 쉬고 싶습니다. 대신 극락세계가 있다면 그곳으로 가고 싶어요. 극락세계는 있습니까? 절에는 어렸을 때부터 다녔지만 극락세계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스님이 있다고 말씀하시면 저는 믿겠습니다.”“업을 가진 채로 불국토에 태어날 수 있다면 그곳은 서방정토뿐이라고 믿습니다. 저 또한 죽으면 서방정토에 왕생할 것이고요.”순간, 거사님 얼굴에 안도감이 흘렀다.“스님, 저도 서방정토에 태어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지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극락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믿고 그 나라에 가서 태어나기를 서원하며 일념으로 아미타불 명호를 칭념하는 것입니다.”내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거사님은 이미 아미타불을 염하고 있었다. 극락세계에 태어날 수 있기를 간곡하게 발원했던 것이다. 소박하고 섬세한 그 모습에서 참으로 고왔을 거사님 삶을 상상해봤다.거사님은 늙으신 어머니와 세상물정 모르는 아내, 어린 두 아들을 두고 가겠지만 그 또한 인연의 흐름에 맡기기로 했다며 허허로운 웃음을 지었다. 처음엔 정말 살고 싶어서 무엇이든 다 하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죽는 일은 마음대로 안 된다는 말을 할 때는 얼굴에 허무함이 감돌았다.“스님, 사람들은 돈이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지만 그 돈 아무짝에도 쓸모없습디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연 앞에서 허락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죽을 인연 앞에서 몸부림 쳐봤자 도리가 있겠습니까? 이제 다 내려놓았고요. 다시는 이 세상에 오지 않으렵니다.”거사님은 임종 1주 전에도 언양을 찾았다. 한 달 째 물 한 모금 삼킬 수없는 상황이었지만 친구가 운전하는 차를 4시간 동안 타고 왔다. 통증이 조절되지 않아 죽는 것이 더 낫겠다며 힘들어했다. 하지만 삶의 모든 것을 놓아버렸다는 말을 하는 모습에서는 생사를 초월한 여유가 보였다.“고생하는 스님 얼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고 싶어서요.”거사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나는 그런 순간을 마주칠 때마다 환자의 눈물이 내 가슴으로 들어와 흘러내림을 느낀다. 파리한 거사님 얼굴을 만져드리며 다시는 만나지 못할 모습을 기억 속에 담았다. 거사님 얼굴 뒤로 뭉게구름이 간월산을 가르며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이렇게 헤어지면 백천만겁 지나도 다시는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만나지 못할 것이다. 영원의 시간에 오직 한번뿐일 소중한 인연 앞에서 우리는 서로 바람처럼 사라짐을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거사님이 죽어갈 때, 죽음의 순간에, 49재 기간에 극락정토 왕생을 일념으로 염불해드릴 것을 약속했다. 앙상한 콘크리트 뼈대만 보이는 병원 건물을 마지막으로 돌아보던 거사님은 병상하나를 기부한 후 몸을 차에 실었다. 차창을 열고 고개를 돌려 손을 흔드는 모습에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꼈다. 이곳 자제병원에 머무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시게 해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거사님은 아내가 잠시 시장에 간 사이, 당신이 좋아했던 염불을 커다랗게 틀어놓고 단정히 누워 이 세상을 떠났다. 언양 건축현장을 다녀가고 7일 뒤였다. 짧은 기간이지만 일심으로 염불했고 떠나면서도 염불을 하다가 떠나신 것 같았다.아미타부처님. 정토왕생을 믿고 그 나라에 태어나기를 서원했으며 일념으로 부처님 명호를 칭념하온 정토행자 거사님을 사십팔원 대원력으로 섭수하여 주옵소서.능행 스님 정토마을 이사장 [이 게시물은 정토마을님에 의해 2012-10-10 22:40:27 자료실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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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09.07.07.>“위로는 깨달음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 구제” 제24회 불.. 컨텐츠이미지 [ 등록일 : 2012-08-27 , 조회수 : 3,476 ]
정토마을 
제24회 불이상 시상식여성불자 모임인 ‘불이회(不二會·회장 홍라희)’가 주최하는 ‘제24회 불이상 시상식’이 6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열렸다. 연구 분야에선 인도· 서역·중국·한국 등의 불상을 비교 연구하며 업적을 쌓고 있는 임영애(경주대 문화재학부) 교수와 전문적 연구를 통해 한국 선불교를 해외에 알리는 공로를 인정받은 안준영(캐나다 토론토대학 종교학과·동아시아학과) 교수가 공동 수상했다. 실천분야에선 말기 환자를 위한 호스피스 활동의 불교계 선구자인 능행(정토사관자재회 이사장) 스님이 수상했다.불이상 시상식이 끝난 뒤 수상자와 심사위원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왼쪽부터 이명희 불이회 부회장, 홍라희 불이회 회장, 윤용숙 불이회 명예회장, 안준영 교수, 능행 스님, 임영애 교수, 김종서 명예교수, 정병조 교수, 권기종 명예교수. [김성룡 기자]홍라희 회장은 인사말에서 “‘불이상’은 한 재단이나 개인이 주는 상이 아니라,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함)의 심정으로 함께 마음공부를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불교계 인재양성의 필요성을 절감해 1985년에 제정한 상”이라며 “수상자분들이 앞으로 더욱 수승(殊勝: 특별히 뛰어남)한 활동을 펼쳐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수상 소감에서 임영애 교수는 “불교미술에 입문한 후 나를 사로잡은 화두는 ‘한국 불교 조각의 정체성’이었다”며 “인도와 실크로드, 중국과 한국 불상 연구를 거듭할수록 하나씩 퍼즐을 맞춰가는 심정이다. 이제 서서히 그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고 밝혔다.안준영 교수는 “중국 불교와 일본 불교에 비해 한국 불교는 서구 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 선서(禪書)의 영어화 작업에 매진하겠다”고 다짐했다. 능행 스님은 “출가한 승려가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상을 받으니 부끄럽다”며 “호스피스 활동을 하면 할수록 ‘우리 인간은 죽어가면서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걸 절감한다”고 말했다.‘불이회’는 한국 불교계의 활성화와 여성불교, 재가불교의 위상을 정립하고자 74년에 설립, 85년부터 불이상을 제정해 시상하고 있다. 매년 연구와 실천, 2개 분야에서 수상자를 선정한다. 올해 심사는 정병조 동국대 교수, 김종서 서울대 명예교수, 김응철 중앙승가대 교수, 홍라희 불이회 회장, 윤용숙 불이회 명예회장이 맡았다. 수상자에게는 각각 상금 1000만 원이 수여된다.백성호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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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병을 감춘 채 삶을 마감한 보살님 컨텐츠이미지 [ 등록일 : 2012-08-21 , 조회수 : 1,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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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을 감춘 채 삶을 마감한 보살님 2012.08.01 11:08 입력 발행호수 : 1156 호 / 발행일 : 2012-08-01 정토마을 공동체는 전국 곳곳의 스님과 법우님들의 후원으로 불치병환자를 위한 의료사업을 펼치고 있으며 임상 전문가 양성기관도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정토마을과 인연을 맺고 후원하는 분들은 대부분 소중한 바람을 가슴에 품고 있다. 가족과 친척, 그리고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려 할 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 그리고 자신이 세상을 떠날 때 도움을 받고 싶은 마음이 그것이다. 이런 마음이 정토마을을 돕는 정성으로 이어지고, 또 그러한 정성이 모여 불교계 최초 완화의료전문 자재병원의 모습을 만들어가고 있다.많은 후원자들이 있지만 특히 주변가족들에 대한 자신의 역할이 끝나면 정토마을에 들어와 살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봉사를 통해 삶을 회향하겠다는 열정의 발로일 것이다. 사찰에서 소임을 맡고도 정토마을과 인연을 맺어 4년 동안 틈틈이 봉사활동을 펼쳤던 보살님이 기억난다. 보살님은 2년 전 어느 날 암 말기 선고를 받은 직후 정토마을로 전화를 걸었다.“스님, 병원은 언제쯤 완공되나요? 제가 빨리 정토마을에 들어가서 그곳 일들을 돕고 싶어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스님.”느낌이 이상했다. 주변 도반들에게 물었지만 아무도 보살님의 상태를 알지 못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보살님이었다. 수화기 너머 지친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보살님은 깊은 산속에서 침을 맞으며 아픈 몸을 다스리고 있다고 했다. 몸이 나으면 찾아뵙겠다고 했다. 보살님 얼굴이 눈에 아른거려 마음이 아팠다. 그분은 늘 온화한 웃음으로 사람을 대하곤 했다. 하지만 보살님은 도반들에게 자신의 질병과 상태를 숨기고 얼굴조차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보살님. 산속에서 침을 맞을게 아니라 병원을 가보세요. 병원에서 현재 상태를 점검하고 적합한 치료를 받으세요.”그러나 보살님은 완쾌해서 건강한 모습으로 찾아뵐 테니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했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병을 왜 그렇게 감추는 것인지 궁금했다.“너무 부끄러워서요. 수십 년을 절에 다니며 온갖 불사에 마음을 보태고 몸으로 실천하며 살았는데 이런 몹쓸 병이 저에게 들었다는 것이 말이에요. 때로는 제 자신은 물론 남들까지 미워져요.”출렁이는 분노의 파도가 전해졌다. 직접 만나고 싶었지만 2년의 투병생활 동안 네 번의 전화통화가 전부였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질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그분과 이야기 나누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어느 날 전화벨이 다급하게 울렸다. 보살님 가족들의 전화였다. 서울의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지만 암이 전신으로 전이돼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계속 나를 찾는다고 했다. 보살님은 바람 앞 촛불처럼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많이 좋아지고 있다는 말만 믿다가 그나마 건강할 때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게 못내 안타까웠다. 보살님은 그 후 며칠 지나지 않아 임종했다.그 날 새벽, 기도 중에 보살님 모습이 홀연히 스치고 지나갔다. 가족들에게 전화를 해보니 방금 숨을 거뒀다고 했다. 2년 전, 병원 완공시기를 묻던 보살님 모습이 생생했다. 믿겨지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마지막 가는 길에 법복 한 벌 단정하게 입혀드리고 꽃잎이불 고이 덮어 관을 닫아드리는 것밖에 없었다.육체에 병이 깃드는 것은 죄도 허물도 아니며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은 더더욱 아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면 누구나 병을 앓을 수 있고 다양한 이유로 죽음에 이르게 된다. 아무리 힘든 질병이 엄습해 오더라도 그것을 사람들에게 밝게 드러내고 적절하게 치료를 받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생명이 소멸하는 것을 멈출 수 없다면 남은 삶이 더욱 빛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질병은 적절한 시기에 적합한 방법을 사용할 때 치료될 수 있다. 보살님을 보내면서 가장 안타깝고 가슴 아팠던 것은 자신의 질병을 숨긴 채 혼자 해결하려 했다는 점이다. 내 인생은 내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를 둘러싼 환경 역시 내가 만들어가고 있음을 언제나 유념해야 한다. [이 게시물은 정토마을님에 의해 2012-10-10 22:40:27 자료실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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