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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편히 가게 해주소, 스님" 15년만에 약속 지키다 (2012.08.10.).. 컨텐츠이미지 [ 등록일 : 2012-08-20 , 조회수 : 2,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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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행 스님, 1만5000명 후원 받아 호스피스 병원 지어임종 직전 비구 스님 간청에 병원 건립하기로 약속… 울산에 10월 완공 예정 .par:after{display:block; clear:both; content:"";} "스스로 '자(自)', 있을 '재(在)', 그래서 자재병원이에요. 생사(生死)로부터, 모든 고통과 욕망으로부터 자유자재롭기를 바라는 이름이지요."중생의 고통을 껴안는 것이 출가자의 삶이라지만, 능행(能行·53) 스님은 유난히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사람들과 인연이 깊었다. 스님은 2000년 충북 청원에 불교계 첫 독립형 호스피스 기관 정토마을을 세웠고, 오는 10월엔 울산에 불교계 첫 호스피스 전문 병원인 자재병원 완공을 앞두고 있다. 비구니 스님 홀로 세운 뜻에 후원자 1만5000여명이 함께해 가능한 일이었다.◇"병원 하나 세워주소""병원 하나 세워주소." 15년 전 한 비구 스님의 이 한마디가 자재병원 건립의 시작이었다. 1997년, 호스피스 활동을 하던 스님에게 서울의 한 천주교계 병원 수녀님이 전화를 걸어 왔다. "아무래도 스님 같은 환자가 있는데 입을 꼭 닫고 있어요." 당시 능행 스님은 죽어가는 사람들의 고통을 지켜보는 게 너무 힘들어 호스피스 활동을 접을 생각이었다. 스님은 "이 사람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서울로 갔다. 키 크고 비쩍 마른 남자가 돌아누워 있는데, "스님" 하고 불렀더니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30년 넘게 선방(禪房)에서 수행만 한 비구 스님이었다. 폐암 말기인데, 거둬주는 곳이 없어 천주교 병원이 돌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스님은 "불자(佛子)가 1000만이나 되는데 불교인들이 죽을 병원 하나가 없다. 스님들이 편히 죽어갈 수 있는 병원 하나 지어달라"며 능행 스님에게 매달렸다. 며칠간 눈을 감지 못하던 스님은 "그러겠다"는 약속을 받고서야 눈을 감았다. .par:after{display:block; clear:both; content:"";} /*기사 본문 유형별 포토 팝업 탭 div*/a.pop_btn_mov { width:90px; height:90px; display:block; position:absolute; top:50%; left:50%; margin-top:-45px; margin-left:-45px; background: url(http://image.chosun.com/cs/article/2012/type_mov_onoff.png) no-repeat 0px 0px; }a.pop_btn_mov:hover { background-position: 0px -98px;}a.pop_btn_mov img {display:none;} 오는 10월 불교계 첫 호스피스 전문 의료기관인‘자재병원’완공을 앞둔 능행 스님은“임종을 앞둔 환자를 돌보는 정토마을을 운영하고 이 병원을 세우는 동안 금액으로 헤아릴 수 없는 큰 마음을 너무도 많이 받았다”고 했다. 능행 스님은 요즘 임종을 앞둔 환자를 돌보면서(위 사진), 틈틈이 병원 공사 현장을 둘러본다(아래 사진). /정토마을 제공 ◇유난했던 죽음과의 인연30대 초반에 출가한 능행 스님은 출가 직후부터 임종을 앞둔 환자를 많이 돌봤다. 자신의 출가를 적극 지지하고 도왔던 재가자 부부 중 남편이 췌장암으로 숨을 거두기까지 곁에서 지켜본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로도 결식 아동과 독거 노인, 무의탁 환자를 돌보던 그는 "내 뜻과 상관없이, 자꾸만 죽어가는 사람을 더 많이 만나게 되더라"고 했다. '호스피스'라는 개념도 생소했던 때였다. 하지만 "불법(佛法) 공부는 천천히 하더라도 이 사람들 곁에 머물러야겠다"고 결심했다.서울·부산 등 대도시 병원의 행려병동, 음성 꽃동네 같은 시설들까지 스님을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부산의 한 행려병동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환자를 만났지요. 거리에서 쓰러져 실려왔는데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간암이 진행된 상태였어요. 배에 물이 차서 산처럼 불러온 채로, 내 손을 잡고 '엄마, 가지 마' 하며 매달리는데…." 그 손을 맞잡아주며 스님은 "그래 있을게, 떠나지 않을게"하고 답했다.◇정토마을, 그리고 자재병원2000년 3월 첫 환자를 받은 정토마을은 늘 자리가 모자랐다. "개원 첫해 137명이 정토마을에서 돌아가셨는데, 순서를 기다리다 먼저 가신 분은 훨씬 더 많았지요. 그걸 1~2년 겪다 보니 도저히 안 되겠더군요." 2002년 가을, 병원을 짓기로 마음먹었다. 1000일 기도, '탁발'(모금)도 시작했다. "1년에 15만㎞씩 차를 몰았죠. 후원을 해줄 만한 곳이면 전국 방방곡곡 안 가본 곳이 없어요."후원을 부탁하는 강연을 했던 한 성당의 천주교 신자들은 가진 돈을 다 털어 소쿠리에 담아 주기도 했다. 물론 불자들과 스님들 도움이 가장 컸다.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원로의원 성수(性壽) 스님은 지난 4월 입적 직전 후원금을 보내왔다. 노스님이 수중에 있는 돈을 1000원짜리까지 모두 넣어 싸맨 손수건 안에는 '열심히 해주시게'라고 쓴 편지도 들어 있었다. "어른 스님들 중에 그렇게 도와주지 않은 분이 거의 없습니다. 금액으로 헤아릴 수 없는 큰 마음을 너무나 많이 받았어요. 무한한 자비심에 늘 감사하며 살지요."자재병원은 올 10월 건물이 완공되면 내부 시설 등을 갖춰 내년 초 108병상 규모로 개원할 예정이다. 스님은 "뜻있는 봉사자들이 무보수로 간병을 담당하고, 의료진도 가능한 한 자원봉사자를 모아 운영해 나갈 생각이지만 아직 사람도 돈도 턱없이 모자란다"면서도 "이것저것 재고 생각하면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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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미움 내려놓는 순간이 곧 새로운 탄생 컨텐츠이미지 [ 등록일 : 2012-07-27 , 조회수 : 1,2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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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 내려놓는 순간이 곧 새로운 탄생 2012.07.19 12:16 입력능행 스님 jungtoh7@hanmail.net 발행호수 : 1154 호 / 발행일 : 2012-07-18 죽음을 돌본다는 건 또 다른 수행이다. 돌보는 이는 죽음을 바르게 자각하고 죽음의 의미에 대한 통찰력을 갖게 한다. 자신의 죽음을 보살핌 받는 이는 자기잘못을 스스로 용서하며 내면의 행복을 일깨우고 사랑하게 한다. 말기위암으로 투병하던 환자도 죽음 앞에서 미움과 원망을 내려놨다. 그리고 미움, 원망 내려놓은 자리에 다시 사랑을 채웠다.환자는 조용히 삶을 마감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마음속엔 남편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있었고, 시어머니도 미워했다. 꽃다운 열여덟. 환자가 결혼했던 나이다. 시골에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남편과 과일 농사를 지으며 딸 둘과 아들 하나를 가졌다. 그렇게 15년, 위암을 알았고 암은 전신으로 퍼졌다. 죽음을 앞두자 암의 어두운 그림자는 환자의 마음까지 아프게 했다.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늦더위를 물릴 무렵, 정토마을 앞뜰 그네에서 환자와 마음을 나눴다.“아무도 보고 싶지 않아요. 다 미워요. 꼴도 보기 싫어요. 자식은 제가 키울 수 없으니 보고 싶지 않고요. 남편과 시어머니는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요.”“보살님, 삶의 여정 중에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가 있었다면….”“결혼 생활이요. 저는 결혼이 지옥이었어요.”환자는 남편의 외도와 지나친 성 욕구에 지쳐있었다. 남편은 위암수술 뒤에도 부부관계를 요구했었다. 옆방에 홀로 계신 시어머니도 부담이었다고 토로했다. 둘째, 셋째 아들이 있음에도 병든 며느리의 밥상을 받고, 옆방에서 아들내외 관계를 알고 있는 시어머니가 지긋지긋했다고 했다. 그래서 홀로 있는 지금이 홀가분하다고 했다.“이런 얘기를 스님께 말할 수 있어서 홀가분해요. 너무 부끄럽고. 죽는 마당에 다 묻고 가자했는데, 말씀 드리고 나니 가슴이 뻥하고 뚫리는 것 같아요.”곧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온다고 했다. 환자도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깊어가는 가을, 사랑하며 보내야 한다는 사실도 알았다.“스님은 사랑할 사람이 있어요. 보살님은 누구랑 사랑 할래요?”“아이들…, 아이들이 있네요. 남편도 있고요. 사랑하면 제가 어떻게 죽어요. 막내는 아들을 바라는 시어머니 성화로 간신히 낳았어요. 예쁘고 좋은데 제가 키울 수 없잖아요. 그래서 막내를 데리고 오지 못하게 했어요. 자꾸 보면 제가 죽을 수 없을 것 같아서….”환자는 죽음 앞에서 사랑이 소용없다고 좌절하고 있었다. 죽음이 사랑에 걸림돌이 될 수 없다는 진리를 알고 나서야 환히 웃었다.“사랑이란 흐르는 강물 같아요. 지금부터 나누는 사랑이 강물처럼 흘러 가족들 삶을 촉촉이 적셔줄 거예요. 훗날 부처님 자비바다에서 가족과 만날 수 있다면 어떨 것 같아요?”“정말 좋아요 스님. ‘강물 같은 사랑’이라…. 잘 모르지만 그냥 사랑하면 되는 건가요? 그렇게 미워했는데…. 제 마음이 텅 비는 것 같아요. 이상하네요. 기분이 참 좋아요. 애들 아빠 요즘 배따느라 혼자 바쁠 거예요. 우리 남편 잘 생기고 성격도 좋아요. 막내도 한참 못 봤네요. 제 가슴이 따듯해져요 스님. 가을햇살이 좋아서 그런가?”어미 개가 새끼들 몰고 발밑을 오갔다. 환자는 강아지를 만지며 “짐승이나 사람 새끼는 다 저렇게 사랑스럽고 예쁘다”고 중얼거렸다. 이후 4~5차례 만남에서 환자는 부처님께 의지했다. 항상 염주를 손에 들고 염불했다. 다음 생에서는 수행자 삶을 서원하면서. 가장 명확하고 가장 쉽게 두려워하는 우리의 관심은 죽음이다. 지금은 존재하지만 언젠가 존재하지 않는 게 우리다. 갈등은 죽음에 대한 자각과 계속 살고자 하는 바람 사이에서 일어난다. 중요한 사실은 따로 있다. 삶과 죽음은 따로 있지 않다.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하는 게 잘 사는 법을 배우는 방편이다. 생물학적 죽음은 명료하나 심리적 삶과 죽음은 서로 맞닿아 있다. 죽음은 단순히 삶의 마지막 순간이 아니다. 육신 껍데기를 벗는 순간, 사랑으로 가득 찬 마음도 죽는 걸까. [이 게시물은 정토마을님에 의해 2012-10-10 22:40:27 자료실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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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죽음, 준비할수록 삶은 향기로워져 컨텐츠이미지 [ 등록일 : 2012-07-06 , 조회수 : 1,3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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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준비할수록 삶은 향기로워져 2012.07.03 15:53 입력 발행호수 : 1152 호 / 발행일 : 2012-07-04 사람은 종종 죽음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남들 다 죽는데 나도 그때 죽으면 되는 것이지, 인연 따라 왔다가 인연 따라 가는 거지.그러나 죽음에 대한 이런 태도는 죽기 전까지만 통용될 뿐이다. 죽음에 임박하면 그런 생각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만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세상이다. 죽음을 함부로 생각하지 말고 진정으로 죽음을 준비해야만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다.그동안 죽어가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참 많은 것들을 경험했다. 흔히 걸림 없는 수행자들의 죽음, 출가 장부의 죽음은 들길의 풀밭 언덕을 베고 하늘을 덮고 누우면 그만이라고 한다. 하지만 들길 풀밭에서 논두렁을 베고 임종을 맞이한 수행자가 있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어느 수행자의 마지막 모습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자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그분은 아주 젊었다. 암에 걸렸으며 치유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며 침착하게 투병생활을 했다. 주변사람들에게도 자신의 삶을 여여하게 정리해 보이는 여유를 보여줬다.얼마 후 전신으로 암이 퍼져 통증이 시작됐다. 의사가 최후통보를 한 후부터 갑자기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오늘을 넘기기 힘듭니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합니다.”의사의 말에 그는 깜짝 놀라며 절규했다.“뭐라고! 말도 안 돼! 나는 아직 이렇게 멀쩡한데.”눈동자는 두려움으로 가득 차고 동공은 확장됐다. 의사가 마른 팔뚝에서 피를 뽑았다. 그가 물었다.“스님! 사람이 정말 이런 상태에서도 죽는단 말입니까!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빨리. 아니야, 아직은 아니에요. 어떻게든 살려줘요 스님. 다른 병원이라도 가게 해주세요. 어서요.”내 목을 끌어안고 흐느끼는 그를 보며 나는 다시 한 번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을까. 둥그런 눈동자는 삶의 의지로 빛났지만 죽음의 바람은 끝내 그의 삶을 쓸고 가버렸다. 평소 차분하게 마지막을 준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죽음의 열차소리가 귓전 가까이 들려오자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여 필사적으로 저항하다 세상을 떠났다.누구나 편안히 잠드는 것처럼 죽기를 원할 것이다. 하지만 저마다 외모가 다르듯 죽어가는 모습 역시 다르다. 천차만별의 죽음을 보며 ‘잘 살아야 잘 죽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삶의 흔적들이 보여주는 진실은 죽음의 과정에서 드러난다는 사실 또한 알 수 있다. 많은 죽음을 보며 이제는 ‘어떻게 하면 잘 죽을까’가 아닌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가지고 하루의 삶을 챙기게 된다. ‘오늘 하루 아쉬움이나 후회는 없는가’를 살피며 살게 된다. 진정으로 오늘 하루를 잘 사는 것이야말로 아름답고 평화로운 죽음의 근원이 됨을 알았기 때문이다.죽음이 언제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고 자신에게 시간이 제한돼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내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 동안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되묻게 된다. 또 부질없이 허망한 일들로 자신의 삶을 채우지는 않을 것이다.죽음은 생방송이다. 사람들은 텅 빈 자신의 삶 앞에 죽음의 폭풍우가 휘몰아치면 그제야 후회와 아쉬움에 절망한다. 이렇게 가슴 치는 일보다 죽음이 찾아오기 전에 자신의 삶 속에서 늘 죽음을 생각하는 삶을 살아가다 보면 의미 있는 삶으로 자신의 시간을 채워가게 될 것이다.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죽음을 좀 더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가슴 저미게 느끼며 살아간다면 누구의 삶이든 맑고 향기로울 것이다. 더불어 세상도 함께 맑고 향기로우며 인간의 이기심은 엷어지고 사람의 따뜻한 정이 흐르는, 그야말로 사람 사는 세상으로 순화될 것이다.마른 숲 빈 가지 사이로 바람이 운다. 허공에 뜬 반달은 서쪽을 향해 서 있는데 실타래처럼 엉킨 인연, 이곳에 두고 그대 홀로 어디로 가는가. 나이 서른, 못다 피고 지는 애달픈 넋이여. 우리는 죽음을 진정으로 잘 알고 있는가. 오늘 밤 죽음이 우리에게 찾아온다면 기쁨으로 반길 준비가 돼 있는가. [이 게시물은 정토마을님에 의해 2012-10-10 22:40:27 자료실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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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백혈병 슬기가 세상에 남긴 메시지 컨텐츠이미지 [ 등록일 : 2012-06-24 , 조회수 : 1,4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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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 슬기가 세상에 남긴 메시지 2012.06.19 15:52 입력능행 스님 jungtoh7@hanmail.net 발행호수 : 1150 호 / 발행일 : 2012-06-20 삶을 살아내는 방법은 다양하다. 삶의 여정 중에서 마주치는 상황과 사람들 또한 다양하다. 무엇하나 같은 것이 있을까마는 질병을 얻게 되는 원인과 투병 그리고 몸을 벗게 되는 과정에서 특히 연기법의 깊은 고리를 발견하곤 한다.요즘 들어 각 지역 대학병원에는 불치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로 넘쳐난다. 여린 생명에 치유할 수 없는 질병이 깃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무엇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됐다는 것인가. 암을 비롯한 불치병을 앓는 유아와 아동, 청소년이 늘어난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조금만 숙고해본다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부모는 어린생명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임신 전부터 몸 상태에 각별히 신경써야한다. 결혼을 앞둔 젊은이들 그리고 결혼해 자녀를 기다리는 예비 부모들에게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사항이다. 부모의 밝고 긍정적인 정신건강과 바른 음식물 섭취 등 건강한 신체의 유지는 소중한 자녀를 불치의 질병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는 면역력이다. 너무 차갑거나 뜨거운 몸 상태를 비롯해 오염된 음식 그리고 술·담배·인스턴트식품 등 다양한 요소들이 태아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고 그러한 원인들이 결국 불치의 질병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백혈병으로 고통 속에서 살다 우리 곁을 떠난 슬기를 잊을 수 없다. 슬기는 감기증세가 지속돼 동네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호전되지 않아 찾아간 종합병원에서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슬기와 가족, 주변 친척들이 2년 동안 겪은 경제적·정신적·육체적 고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40대 초반인 아버지, 30대 어머니와 8살 언니는 김해와 서울을 오가며 입·퇴원을 수십번 반복하는 과정에서 웃음을 잃어갔다. 아이가 점점 죽음에 가까이 갈수록 슬기 부모님의 몸과 마음도 함께 죽어갔다. 슬기가 세상을 등진 날, 텅 빈 늦가을 들판에 홀로 서 있는 허수아비 같았던 슬기 아버지는 죽은 자식을 안고 온몸을 떨며 오열했다. 슬기 어머니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작은 나무 관을 곁에 놓고 향물로 몸을 닦는 내 손이 떨려왔다.“슬기야, 무슨 인연으로 이렇게 가야하니. 이제부터는 세세생생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거라.”나 또한 이런 상황에 놓일 때마다 큰 고통을 경험한다. 어떻게 해야 초연하고 무심할 수 있을까. 이렇게 극심한 고통이 내 인생에는 없기를 바라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것인가.“스님, 사람들이 아무리 좋다고 웃어도 저는 웃을 일이 없어요. 자꾸만 무기력해집니다. 돈만 많았다면 고칠 수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자식을 가슴에 묻었는데 더 살아서 뭐합니까. 그 어디를 가도 슬기 얼굴만 보여요. 어서 늙어 죽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이들 부부에게 슬기의 마지막 여정은 기억에서 묻어버리고 싶지만 평생 잊지 못할 아픔일 것이다. 자식의 고통스러운 모습 앞에서는 어떤 것도 의미가 없다는 깊은 절망감을 털어놓을 때마다 그 무엇으로도 위로할 수 없는 막막함을 느끼곤 했다.간혹 아이들이 힘든 질병을 딛고 일어서는 사례도 있지만 그러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온몸에 병이 완연해도 살기 위해 참고 견디는 아이의 의지가 담긴 맑은 눈망울과 무너지는 육체 사이에는 희망과 절망이 함께 흘러내린다.임신 중에 친할아버지와 고모가 암으로 돌아가셔서 슬기 어머니가 정신적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워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임산부의 정신건강이 태아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부모들은 후손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돌봐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혼탁한 세상만을 탓하기에 앞서 부모의 불안정한 마음과 건강하지 못한 육체로 인해 어린 생명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봐야 한다.  건강한 아이의 삶은 부모님의 몸과 마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잊지 말자. 부처님 가르침 안에서 태교가 이뤄지고 아이의 양육이 이뤄진다면 아이들은 건강한 육신과 마음으로 미래세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게시물은 정토마을님에 의해 2012-10-10 22:40:27 자료실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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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폭력 휘두르던 아버지 마지막 당부 컨텐츠이미지 [ 등록일 : 2012-06-08 , 조회수 : 1,2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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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휘두르던 아버지 마지막 당부 2012.05.28 16:48 입력 발행호수 : 1148 호 / 발행일 : 2012-05-30 아내와 이혼하고 아들 둘, 딸 하나를 둔 57세 폐암 말기 환자가 있었다. 막노동 하다 발병한 환자는 자식들이 간병의 어려움을 호소해 정토마을로 왔다. 작은 아들이 먼저 떠나고 28살 큰아들이 남아 하룻밤을 지내고 가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환자인 그의 아버지는 가난 속에서 술만 먹으면 폭력을 휘두르는 할아버지에게 무척 많이 맞으며 자랐다고 했다. 견디다 못한 아버지는 매일 매를 맞는 할머니를 남겨두고 고향을 떠나 객지 노동판을 전전하며 생활했다. 곧 어머니를 만나 가정을 꾸렸지만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어머니와 자기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고 했다. “아버지가 죽고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크면 복수를 하겠다고 다짐도 했죠. 저희들 때문에 도망가지도 못하는 어머니를 보면 분통이 터졌어요.”아버지처럼 큰아들도 집을 나왔다. 그러나 어린나이에 가정도, 자식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여자를 만나 매일 싸우며 살다가 이혼했다고 했다. “저는 절대로 가족을 때리지 않겠다고 다짐했죠. 하지만 저 역시 할아버지, 아버지와 다르지 않았습니다.”큰아들에게서 미워하며 닮아가는 동업(同業)의 갈고리가 무겁게 느껴졌다. 큰아들이 떠나고 쓸쓸히 누워있는 환자 모습에서 폭력성의 흔적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선한 모습으로 자식들을 기다리는 아버지가 있었을 뿐이었다. 삶이 답답하고 하는 일도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가족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다고 말하는 환자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환자는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날 길 없는 현실에 좌절해서 술을 마셨고 폭력을 휘둘렀다고 했다. 때릴 때 어떤 생각을 하느냐는 질문에 환자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냥 세상이 다 부서져라 하고요. 나도 너도 다 죽자, 그런 마음이었죠.”환자는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과 함께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털어놨다. 어머니가 아버지 때문에 죽었다고 말하는 환자에게 끝없는 분노가 느껴졌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가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 지금 생존해 있는지조차 모른다며 한숨을 쉬었다. 환자는 자신의 죄가 자식들에게 대물림하지 않기를 바랐다. 또 자신의 죽음으로 자식들의 가난과 불행이 멈추기를 원했다. 하지만 막내딸이 학교에서 싸움을 하고 도둑질을 하더니 지금은 자기같이 무능력한 남자를 만나 살고 있다며 눈물을 흘렸다. 가끔 정토마을을 찾아오던 둘째아들의 눈에는 분노가 가득하곤 했다. 하지만 말없이 음료수 하나를 환자 머리맡에 두고 가는 뒷모습을 볼 때마다 아릿한 아픔과 함께 ‘도대체 핏줄이라는 게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죽음이 임박한 환자가 두 아들과 딸을 불렀다. 용서를 청하기 위해서였다. 자식들은 불편한 표정이 역력했지만 환자는 자식들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속내를 털어놨다. 환자가 힘들게 말하는 와중에도 딸의 시선은 창밖을 향해 있었다. 둘째아들과 딸은 아버지를 용서할 마음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저 술 마시고 행패 부리던 한 인간이 죽음을 앞두고 있는 것일 뿐, 더 이상의 의미는 없는 것 같았다. “그동안 사는 게 너무 버거웠다. 가족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여유도 없이 먹고 살기에 급급했어. 아버지 노릇, 남편 노릇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우지도 못하고…. 정말 미안하다, 너희들은 나처럼 살지 말고 부디 좋은 부모가 돼야 한다.”가난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서였겠지만 자식들은 그런 마음을 외면했다. 환자는 마지막으로 아내를 보고 싶어 했지만 차마 자식들에게 속내를 드러내지 못했다. 며칠 후 환자는 큰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거칠게 몰아쉬던 숨을 내려놓았다.부모가 살아온 삶의 그림자는 그대로 자식들의 삶에 드리워져 덫이 되곤 한다. 문제를 유발하는 아이에게는 반드시 문제의 부모가 있다. 하지만 자식과 남편, 아내와 부모 그 누구도 ‘나의 것’이 아니다.  서로 존중하고 소중히 여겨야할 귀한 생명일 뿐이다. 싫건 좋건 아이들은 부모를 보며 부모의 역할에 대해 배운다. 그런 면에서 아이의 모습을 결정짓는 건 전적으로 부모의 몫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듯싶다.  [이 게시물은 정토마을님에 의해 2012-10-10 22:40:27 자료실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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