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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시사매거진 부처님 오신날 특집 [ 등록일 : 2012-05-25 , 조회수 : 1,5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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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자식들 냉대도 품에 안고 눈 감은 할머니 컨텐츠이미지 [ 등록일 : 2012-05-17 , 조회수 : 1,4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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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 냉대도 품에 안고 눈 감은 할머니 2012.05.09 11:30 입력능행 스님 jungtoh7@hanmail.net 발행호수 : 1145 호 / 발행일 : 2012-05-09 5월이 되면 늘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줬던 다정다감한 언년이 할머니가 생각난다. 할머니는 위암으로 3년을 투병하고 74세에 정토마을에 왔다가 진달래가 만개하던 다음해 봄날 세상을 떠났다.할머니는 40대에 일찍 암으로 죽은 남편을 대신해 함양에서 홀로 농사지으며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모두 가르쳤다. 하지만 암이 온몸으로 전이돼 정토마을에 온 후에는 찾는 사람 없이 외롭고 쓸쓸한 시간을 보냈다. 자식들이 아무도 오지 않는 연유가 궁금했다. 딸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보니 고향집에 얼마 되지 않은 논 몇 마지기와 시골집, 그리고 밭을 큰아들에게 물려주자 다른 자식들이 모두 할머니를 외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큰아들밖에 모른다는 딸의 목소리에서 원망이 묻어났다. 둘째와 셋째아들은 시어머니 병수발을 할 바에는 차라리 이혼하겠다는 아내들의 성화에 정토마을을 방문할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또 자신은 딸이라 출가외인 아니겠냐며 나중에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그때 전화하라고 했다. 큰아들에게 연락해 어머니가 기다린다고 말하니 함양에서 정토마을이 있는 청원군까지는 너무 멀어서 못 간다는 말만 남긴 채 전화를 끊어버렸다.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냉정하게 만드는 것일까. 우리의 마음을 타인과 단절시키는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할머니는 자신이 평생 살아왔던 함양 고향집에 가고 싶어 했다. 고향에 가면 아직 살아있는 친구들과 친지들, 그리고 남편 무덤도 볼 수 있다며 그리움 가득한 눈빛으로 먼 산을 바라보곤 했다. 봄이 오면 고향으로 가겠다는 할머니 말 속에는 그리움과 외로움이 짙게 배어있었다. 하지만 어느 자식도 할머니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았다. 보다 못한 사람들이 자식들의 불효를 나무라는 말을 꺼내면 할머니는 언제나 자식들의 허물을 덮기에 바빴다.“내가 물려준 것도 없꼬 묵고산다고 바빠서 잘 해준 것 하나 없어예. 키울 때는 얼마나 착했는지 말도 못합니더. 우리 고향사람들이 다 알아예.”할머니는 야윈 몸과 주름 가득한 얼굴에 그리움 가득 담긴 말간 눈동자로, 가을과 겨울을 지나 봄까지 자신의 인생에서 전부였던 자식들을 말없이 기다렸다.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봄 이파리처럼 파릇한 자식들이 할머니에겐 인생의 전부였으리라. 할머니는 암 투병의 고통스러운 나날 속에서도 자식걱정을 놓지 않았고 행여 사람들이 당신 자식들에게 쓴 소리 할까 첩첩이 새끼들을 감쌌다.하지만 한번도 오지 않는 자식들을 기다리다 지친 할머니는 결국 정토마을 뜨락, 진달래가 소담스럽게 핀 아침나절에 세상을 떠났다. 아무도 없는 병실에서 75년 인생을 고이 접은 할머니. 그리운 고향에 가지도 못하고 그렇게 떠나간 할머니. 죽음 앞에서 피와 살로 맺은 인연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이승을 떠나는 사람들의 고통은 헤아릴 수 없이 크다. 나는 할머니처럼 마음이 넉넉하지 못해 자식들을 이해하거나 용서할 수 없었지만 누워있는 할머니 모습에는 이미 용서가 담겨있었다.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생각하니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티 없이 맑은 미소를 짓던 아름다운 사람 동규씨는 일찍 아내를 잃고 13살짜리 아들을 막노동으로 키우며 살다가 위암말기로 정토마을에 왔다. 그는 4개월 투병 끝에 사슴처럼 선한 눈에 굵은 핏빛 눈물 흘리며 세상을 등졌다. 13살짜리 아들이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보면 평생 가슴이 아플 것이라며 큰아버지 집에 아들을 맡긴 채였다.임종 후, 아들이 도착해 숨을 거둔 아버지 다리를 붙잡고 통곡했다. 대학 들어가면 그때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큰아버지 동네로 돌아가던 그 뒷모습을 잊을 수 없다. 부모님 은혜의 무게가 얼마나 크고 무거운지, 자식인 우리는 잘 모른다. 티끌 하나조차도 홀로 존재할 수 없는 세상에서 우리들은 부모님 은혜에 무감각한 채 살아가고 있다. 부모님의 늙음과 질병 그리고 죽음에 대해 평소 어떻게 생각해왔는지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그것은 결국 모든 사람이 경험해야 할 여정이기 때문이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부모님에게 먼저 다가가 하루를 함께 보내는 것은 어떨까. 죽음으로 헤어지면 천만년이 흘러도 다시 만날 수 없는 인연 아닌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돌려받는 과보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게시물은 정토마을님에 의해 2012-10-10 22:40:27 자료실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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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간절히 자제병원 건립 유언 남긴 스님 컨텐츠이미지 [ 등록일 : 2012-05-17 , 조회수 : 1,5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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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히 자제병원 건립 유언 남긴 스님 2012.04.24 15:48 입력능행 스님 jungtoh7@hanmail.net 발행호수 : 1143 호 / 발행일 : 2012-04-25 봄 햇살 가득한 정토마을 뜰에 앉아 지난 기억들을 회상해보니 가슴 시리게 불러보고 싶은 스님이 있다.“스님, 저 능행입니다. 이제 정말 병원이 지어지려나 봅니다.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좀 늦어졌네요. 내생에서라도 돕겠다는 약속 꼭 지키셔야 합니다.”1997년 여름, 평소 친분이 있던 의사선생님에게 연락을 받았다. 폐암 말기로 곧 임종을 해야 하는 환자가 있는데 스님인 것 같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덥수룩한 머리와 긴 손톱, 땀으로 찌든 환자복에서 나는 지독한 냄새까지,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마주한 환자의 모습은 처참함 그 자체였다. 스님은 당시 오십대 중반으로 기침이 멈추지 않아 찾아간 병원에서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 입원 중이었다. 처음 몇 달간은 도반스님들이 돌봐줬지만 여름안거로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병이 악화됐으며 일반병동에서 호스피스병동으로 옮겼다고 했다. “중노릇 30년에 공부한다고 시은만 태산같이 받다보니 중생들에게 해준 것이 없어 너무 미안했어요. 이왕 죽을 것인데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또 어떻겠습니까.”싫다는 스님을 애써 설득해 목욕하고 삭발해 옷 갈아입히니 그렇게 맑고 깨끗할 수 없었다. 그동안 스님을 보살피던 의사와 봉사자들도 모두 놀라워했다.그렇게 시간이 흘러 임종하기 4일 전 아침, 스님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으며 깊고 푸른 눈으로 말했다.“지금 나처럼 죽음 앞에 서 있는 순간은 그 무엇보다 사랑과 관심이 가장 필요한 시기인 것 같아요. 평소 조용하고 단조롭게 사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 인과인지 내 죽음의 여정에서 아무도 찾을 수 없어 쓸쓸하네요. 스님. 병원 하나 지어주세요. 불사도 잘하면 수행이 되고 나같이 죽어가는 사람 곁에서 죽음을 돌보는 것도 수행이 될 수 있어요. 불자들 마지막을 돌봐주는 병원 꼭 짓겠다고 약속해야 내가 마음 편히 눈감고 갑니다.”스님은 생의 마지막 3일, 그 힘든 상황에서도 병원건립을 간절히 부탁했다. 나는 자신이 없었다. 의료인이 아닌데다가 무엇보다 가진 것 하나 없는 상황에서 병원을 짓는다는 것은 꿈만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스님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다음 생에 의사가 되고 다시 출가해 스님이 만든 병원에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위해 일할게요. 그러니 그동안 병원을 꼭 지어서 사람들이 부처님 품안에서 편안히 떠나갈 수 있도록 해줘요. 내가 하늘에서도 도와주고 다시 태어나면 스님 병원 가서 도와줄게요.”스님의 간곡한 부탁에 병원 건립을 약속했다. 그 순간, 두렵고 막막했지만 점점 호흡이 흩어져가는 스님 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마음 깊이 다짐했다. 스님은 병원 건립을 약속받자 세 시간을 못 채우고 세상을 떠났다.여름 장맛비가 장대같이 쏟아지던 날 스님이 정진하던 선원 근처에 뼈를 뿌리며 지금의 정토마을을 준비할 마음을 냈다. 가진 것 하나 없었지만 용기를 내 전국 사찰을 돌며 탁발을 했다. 그 결과 1999년 충북 청원군에 부지를 마련해 60평 조립식 건물에 15병상을 만들 수 있었고 2000년 봄 개원식을 가졌다. 불교계 최초의 호스피스 요양센터 정토마을의 출발이었다.개원 첫해 정토마을에서 삶을 마감한 환자가 130명이 넘었다. 병상이 부족해 기다리다 죽는 분도 많아지고 벽이 얇아 밤이면 앓는 소리가 서로의 귀에 들리는 등 이런저런 불편함이 컸다. 그래서 스님의 유언대로 이제는 제대로 된 병원을 지어 환자의 마지막 삶의 질을 높이고 존엄성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서원을 더욱 굳혔다. 2002년에 자제병원 건립을 위한 탁발을 시작했으며 2007년 언양 석남사 근교에 부지를 마련할 수 있었다. 2008년부터 자제병원 건립을 위한 모금을 펼쳤으며 2011년 5월, 건축비의 20%를 준비해 기공식을 진행했다. 그리고 올해 4월1일 상량법회를 봉행했다. 지금은 내년 3월에 있을 개원식을 바라보면서 모금탁발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불자 모두가 자신의 병원을 짓는 것처럼 함께 해줘서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곧 모습을 드러낼 자제병원에 흐뭇해하셨을 스님이 그립다. “스님, 보고 계시는지요. 스님과의 인연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부디 아름다운 자비의 연꽃으로 이 세상에 다시 오소서. 나무아미타불.”  [이 게시물은 정토마을님에 의해 2012-10-10 22:40:27 자료실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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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삶의 끝에서 길을 묻다 (2005년 방영분) [ 등록일 : 2012-05-07 , 조회수 : 1,4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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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동영상은 2005년 11월 19일 밤 12시에 KBS 1TV 에서 방영 되었습니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사람들의 욕심은 끝이 없다.          사람들은 살아 있는 동안 건강하고 풍요롭게 살기 위해 노력한다.          이와 더불어 최근에는 품위 있는 죽음을 의미하는 웰 다잉(Well-Dying)에도          사람들은 관심을 기울인다.         죽음을 목전에 둔 말기환자가 얼마 남지 않은 삶을 보다 충만하고 의미 있게 살면서         생의 마지막까지 인간의 존엄성과 품위를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호스피스(hospice).         이는 단순히 죽음을 넘어서는 특별한 이별을 위한 준비인 것이다.           불교계 호스피스 병동 정토마을에 모인 사람들... 그들의 만남에는 종교를 떠난         그들만의 순수함과 따뜻한 마음이 깃들어 있다. 정토마을 사람들이 느끼는 마지막         삶에 대한 아쉬움과 소중함, 그리고 죽음을 통해 삶의 가치를 되돌아보고자 한다..              미처 못보신 분들과 다시 보고자 하시는 분들을 위하여 파일로 올립니다.        파일받기를 클릭하시고 각자의 컴퓨터에 저장하시어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 프로듀서 : 조인석                     - 연     출 : 채널코리아 양차묵, 박익찬                   파일받기 (대용량 파일이라 시간이 다소 걸립니다.) [이 게시물은 정토마을님에 의해 2012-10-10 22:40:27 자료실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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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상실에 대한 애도는 삶을 일으키는 힘 컨텐츠이미지 [ 등록일 : 2012-04-23 , 조회수 : 1,3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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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에 대한 애도는 삶을 일으키는 힘 2012.04.10 15:44 입력능행 스님 jungtoh7@hanmail.net 발행호수 : 1141 호 / 발행일 : 2012-04-11 마지막을 준비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오순도순 머물다가는 정토마을에서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상실’이다. 이곳에서 환자들은 사회와 가족, 자신의 삶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스스로를 발견하며 힘들어한다. 자신의 존재가 가족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헤아리며 상실감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자제병원 상량법회 하루 전이던 3월31일, 두 가지 상실을 만날 수 있었다. 먼저 암으로 투병하던 아내를 잃은 거사님이 정토마을을 찾아왔다. 아내의 임종을 돌봐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는 거사님에게서 술 냄새와 함께 외로움과 무기력함이 짙게 느껴졌다. 거사님은 직장에 나가겠다는 의욕도 없이 술로 상실감을 달래고 있었다. 이어 1년 전 딸을 백혈병으로 잃은 보살님의 전화를 받았다. 보살님은 딸이 백혈병 진단을 받는 순간 현실을 외면하고 숨어버렸다. 보살님은 1달 전 암을 선고받았는데 지금은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아직 딸이 집에 있는데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며 딸의 이름을 불렀다. 보살님은 죽은 딸을 살아있는 것처럼 생각하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감당할 수 없고 인정할 수 없는 상실감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는 죽음이 끊임없이 넘실대는 삶을 살고 있으며 그 속에서 언젠가는 상실과 마주하게 된다. 죽음을 앞둔 환자가 느끼는 상실의 강도는 극심하지만 이를 표현하는 예가 드물고, 그것을 지켜보는 이들도 떠나는 사람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경우가 많다. 요즘 우리사회가 ‘슬픔의 빠른 극복’을 미덕으로 여기는 것일까. 아버지는 아버지라서, 어머니는 어머니라서, 자식은 자식이라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자신의 감정을 얼음으로 만들어버린다.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이 억압되면 그 감정은 분노와 우울로 변질될 수 있으며 극심한 스트레스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상실에 있어 즉각적인 반응은 대개 사건에 대한 부인이다. 정신적 증상으로 안절부절, 혼란, 무관심 등이 나타나고 신체적으로는 현기증, 기절, 발한 등이 나타나기도 한다.특히 가족을 잃은 아이의 경우 슬픔을 묻거나 마음 놓고 울 수 있도록 허락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어린아이의 가슴에 애도의 감정이 억압된다면 그 감정은 일평생 아이의 가슴에 상처로 남게 될 것이고 그 상처는 삶의 여러 고비마다 투사될 것이다. 상실감을 억압하고 애도의 여정에 참여시켜주지 않는 어른들의 편견은 아이에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심어준다. 하지만 상실은 인생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이며 그것에 대한 애도 또한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특히 죽음으로 인한 상실에 있어 자신이 누구를 잃었는지 알지만 무엇을 잃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또 무엇을 잃었는지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도 마찬가지다.이때는 애도의 감정을 충분히 표출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주변사람들의 지지와 돌봄이 필요하다. 애도는 죽은 사람의 의미를 가슴에서 되새김질하며 산 사람을 진정으로 살리는 일이다. 죽음을 겪는 고통을 삶 안으로 소화하는 일, 죽음과 삶을 잇고 그 자연스러운 이음 속에서 다시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 일이다. 그러기에 소중한 누군가를 잃어버렸다면 그러한 상실에 따른 애도의 여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표현할 줄 알아야하며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고 삭혀내는 시간과 노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정토마을에서 마지막을 맞이한 수많은 사람들의 가족 가운데 떠난 사람에 대한 그리움으로 정토마을을 다시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쩌면 상실의 감정을 외면하고 억압하며 의식 속에서 지워버리려는 의도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을 잃어버렸든지 그것과 직면해야하며, 그럴 때 비로소 건강한 애도의 여정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은 사람이 죽어도 애도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애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실 애도 할 줄 모르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상실과 진솔하게 대면하며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들이 차츰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옛날에는 사람이 죽으면 삼년간 곡을 하며 온 가족이 애도의 여정을 함께했다. 오늘날 그렇게 할 수야 없겠지만 상실에 대한 적절한 애도는 인간을 더욱 고귀하고 의미 있게 만든다.  [이 게시물은 정토마을님에 의해 2012-10-10 22:40:27 자료실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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