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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4 12:5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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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능행스님과 함께 한 국제의료봉사 북인도 라다크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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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 오면 마음이 숙연해 진다. 인도의 오지마을 라다크, 산과 산맥에 둘러싸여 뜨겁고 추운 마을이다.

많은 것을 소유하지 않아도 만족하며 자기가 맡은 일을 묵묵히 하며 살아가고 있다.

크게 동요하거나 남과 비교하지 않는 그들의 삶을 바라보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며, 편안해 진다.

그들이 원한 것은 소박한 것들이다. 가족이 아프지 않고, 가족과 함께 하루 세끼를 해결하면 감사할 뿐이다.

더 편하고 더 나은 생활을 기대하지 않기에 마음이 편한 것 같다.

의료봉사를 한다고 이곳을 찾았지만, 과연 우리가 얼마만큼의 도움을 줄 수 있단 말인가?

그저 신세를 질뿐이라는 미안함과 그들의 소박한 삶이 아름다울 뿐이다.

│라다크 심장재단 병원에서의 의료봉사

 

 

 이른 아침 일출을 받으며 떠오르는 히말라야산맥은 인간의 오만을 나무라는 듯, 우리를 겸허하게 한다.

마치, 전체에 조명을 받는 듯한 황금빛 설산과 돌산의 조화! 누가 감히 그 앞에 토를 달겠는가?

어차피 흙이 되어 돌아갈 몸들...

영원한 어머니의 커다란 자궁과 같은 산들의 둥지 라다크. 교만할 것도, 아등바등할 것도 없는 땅.

이틀간의 여정 끝에 ‘라다크 심장재단’에 도착했다.

방 배정이 될 때까지 로비 바닥에 주저 앉아 준비해 온 선글라스 수백 개를 케이스에 넣었다.

해발 3,500여 미터의 산악지대라 자외선으로부터 눈을 보호해야 하는 주민들을 위한 선물이다.

고산증 약을 복용한 후 침대에 누워 고산증 적응을 위한 휴식을 한다.

말도 많이 하면 안되고 걷기도 천천히 우아하게 하라는 능행스님의 말씀이다.

라다크는 파키스탄과의 정전이후 항상 군인들이 상주하고 있기 때문에 병원 밖 외출은 엄격히 금지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양쪽 코가 콱 막힐 정도로 날씨가 건조하고, 머리가 띵하며 심한 사람은 양 손발이 저리도록 고산 증세가 심하다.

신기한 것은 3일정도 고산증 약을 복용하고 나니 몸이 적응을 하는지 견딜 만 했다.

 

 

 

 

 

 

나는 한방 팀에 배정되었고, 다음날의 진료를 위해 몇 시간에 걸쳐 미팅을 하였다.

한방의사인 한의학박사, 의사를 보좌하는 현직 간호사분이 함께 배정되었고 간호사의 보조가 내 소임이었다.

시간을 맞춰 침을 뽑고, 부황 도구를 떼고 피를 닦아 냈으며, 파스를 붙이고 쓰담쓰담 하기까지 마음을 모아 집중해야 한다.

작은 침과 일반 침은 쉽게 뽑을 수 있었으나 한 뼘 길이의 장침은 쉽게 빠지질 않는다.

특히, 허리에 꽂힌 장침의 경우 환자가 긴장하여 힘을 주면 절대 뺄 수가 없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며 부처님의 명호가 튀어 나온다.

오전에 40명, 오후에 40명, 하루80명의 환자들에게 침술을 행하고, 아픈 부위를 치료한다.

약제 처방만 해도 10여 가지로 구미강활탕, 오적산, 도인승기탕, 인삼패독산, 보증익기탕, 청심연자탕, 평위산 등이다.

나와 한 팀이 된 룸메이트보살은 약제담당을 맡았다.

나이가 나보다 많은 보살은 안경을 쓰고 처방전대로 약을 챙기느라 여념이 없다.

베드가 5개 놓인 좁은 방안은 환자들의 열기와 냄새로 가득하다.

창문을 열고 싶어도 침 맞는 환자들이 찬 기운을 느끼면 안 된다는 의사선생님의 지시대로 열지 못한다.

그밖에도 치료부위 이외의 신체부위는 덮어 줄 것,

베개는 반드시 낮은 것을 사용할 것,

무릎을 치료할 환자는 무릎 밑을 받쳐 줄 것,

침 놓을 부위를 알코올 솜으로 닦을 것,

침을 뺄 때는 직각으로 빼고 피가 날 경우 반드시 마른 솜으로 눌러줄 것 등 상당히 엄격한 규정을 지키며 진료는 진행되었다.

복도를 가득 메운 환자가 차례대로 진료실에 들어오면 티벳 스님 2~3분이 현지 언어로 문진을 하신다.

‘식사는 했는지, 알러지는 없는지, 통증 부위가 어딘지 ...’ 그것을 한국에서 함께 간 비구니스님이 영어로 전해 듣고 진료팀에게 전달한다.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환자들의 옷을 벗기는 일이다.

추운지방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복을 두세 겹 껴입고 있다.

특히 유목민 보살들은 그 위에 두껍고 넓게 퍼지는 코트(?)까지 껴입고 긴 스카프 같은 천으로 허리를 꽁꽁 동여매고 있다.

그러한 복장을 해제시키기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원활한 진료를 위해서는 필수적인 일!

언어가 안 통하니 벗는 제스처를 하면서 연신 ‘Open, open!’을 외칠 수밖에 없다.

치료를 마친 이에게는 어깨를 어루만지면서 “줄레, 줄레~”하면, 고맙다는 표현을 하며 약제부 쪽으로 이동한다.

챠트에 기재된 처방 외에 스님들과 연로하신 분들에게는 오메가 쓰리 3개월분과 비타민제가 추가 되었다.

무릎과 발목이 아픈 사람들에게는 파스 대신 바르는 맨소래담 한 병이 주어졌다.

나와 약제부 보살이 짜고 하는 배려였지만 의사선생님께서는 모르는 척 눈 감아 주셨다.

첫날 약재준비부터 시작하여 3일 동안 204명의 환자를 치료하였고,

점심식사도 하는둥 마는둥 밀린 환자들을 치료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하루일과를 마치고 숙소에 돌아오니 급하게 돌아치느라 침대 모서리에 부딪친 곳이 멍으로 얼룩얼룩하다.

서로의 허리에 파스를 붙여주며 알 수 없는 행복감에 미소 짓는다.

  

│‘레’ 게스트하우스에서의 휴식 – 성지(리종. 헤미스. 틱세곰파)순례

 

   

‘환상의 팀웍’이라는 꼬리표 덕분에 스님들이 계시는 2층에 방을 배정 받았다.

온 몸이 무거운 상태에서 한 층을 덜 올라간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었다.

병원에서도 하얀 시트로 싼 목화 솜 이불을 배정 받았었는데, 숙소로 옮긴 후에도 룸메이트와 함께 푹신한 목화솜 이불이 덮인 더블 침대에서 꿈같은 잠을 잤다.

다른 방은 싱글 침대에 담요가 덮여있었고, 거사들은 가지고 간 침낭을 이용하여 취침에 들곤 했다.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며 너무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6시 산책길에 숙소를 못찾고 헤맬 때 출근하던 군인아저씨가 숙소 명함을 보고 게스트하우스 입구까지 데려다 주었고,

버스에 늦게 승차한 나를 위해 비구니스님이 자리를 양보해 주기도 하셨다.

9박 10일의 여정동안 보이지 않는 힘이 항상 보호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가짐으로 임할 수 있었다.

우리는 제일 먼저 리종 린포체를 친견하였다.

리종 린포체는 1928년 라다크 마토왕국의 왕자로 태어났다.

셀 수 없이 많은 밀교의 기도의식과 안거, 무문관 등을 성만하셨다.

스님은 겔룩파의 수장이시며 달라이 라마존자의 스승이시기도 하다.

린포체께서는 특별히 제주불자들을 위해 친필사인을 해주셨다.

‘수행의 낙원’이라고 불리는 리종 곰파는 레에서 70Km서쪽 리종 마을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서는 엄격한 규율과 규범을 지키는데, 아플 때 외에는 사원의 외출이 금지되어 있고, 침대와 침구의 사용이 불가하다.

일출에서 일몰 때까지 물을 떠 올 때를 제외하고는 자신들의 방을 떠나지 않는다.

소유할 수 있는 것은 바늘뿐이며 방안에서 불을 켜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여자형제나 여자손님이 손댄 물건과도 접촉이 금지되며, 여자는 절대 사원에서 머물지 못한다.

이곳에서는 여성 수행자를 비구니 스님이 아닌 ‘촘마’라고 부른다.

이 여성 수행자들은 사원에서 수행생활을 하지 못하고, 근처 ‘출리찬수도원’에서 수행하고 있다.

 티벳 <사자의 서>를 쓴 파드마 삼바바(구루 린포체)-Padma sam bhava(Guru Rinpoche)도 리종 곰파에서 수행하였으며,

라다크의 왕과 왕비도 이곳을 방문하여 후원하였다고 한다.

 

리종 린포체의 법문을 듣기로 예정되어 있었기에 잔뜩 기대를 했지만 워낙 연로 하셔서 법문은 힘들다고 하였다.

짜이를 한 잔씩 대접 받으며 차담을 나눈 후, 스님께서 하사하시는 생기환(봉숭아 씨앗처럼 생긴 환약)을 받고 돌아 나와야 했다.

다음으로 간곳이 헤미스 곰파이다.

이곳은 주변에 식사할 곳이 없기 때문에 게스트하우스에서 주먹밥을 한 개씩 받아 가지고 갔다.

‘곰파 중의 곰파’라 불리는 헤미스 곰파는 라다크 곰파 중에서 최대의 규모라고 했다.

레에서 50Km의 가까운 거리이기 때문에 그만큼 찾는 이들도 많다.

‘고독한 은둔자’라는 뜻의 곰파는 보통 산중턱이나 산꼭대기에 위치해 있다.

찾아오는 사람도 많지 않고, 찾아오기도 쉽지 않은 곳일수록 성취도 높아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헤미스 곰파는 산 아래 자리 잡고 있어 곰파 입구에 다다를 때까지도 그 모습을 볼 수가 없다.

헤미스 곰파에는 높이 12m의 파드마 삼바바 상이 봉안되어 있고, 지하에는 왕실에서 조성하고 보시한 순금 장신구 등 각종 공예품과 탕카들이 소장되어 있다.

헤미스 곰파가 유명한 또 하나의 이유는 파드마 삼바바의 탄생일을 기념해 열리는 축제 때문이라고 한다.

이 축제는 라다크지역 여러 곰파의 축제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이때에는 스님들이 가면을 쓰고 ‘참Cham’이라는 춤을 추는데,

그 내용은 선신(善神)이 악신(惡神)을 무찌르는 내용으로 불교가 사람들의 마음속의 악을 무찔러 선이 승리했음을 상징한다.

특히, 이때에는 평소 볼 수 없던 대형 탕카가 공개된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하는 이 탕카는 헤미스 곰파의 건물을 전부 뒤덮을 만큼 거대하며 탕카 곳곳에 진주와 보석 등이 장식되어 있다고 한다.

때문에 이것을 보기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6~7월이 되면 이곳으로 몰려 들고 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틱세 곰파에 들렸는데, 레에서 19Km떨어진 겔룩파의 곰파이다.

틱세 곰파는 라다크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곰파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고 있는데,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버티고 있는 곰파의 모습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붉은색과 황금색 건물의 곰파를 중심으로 아래를 향해 줄지어선 하얀 집들이 마치 곰파를 호위하듯 떠 바치고 있는 느낌이다.

티베트 라싸의 포탈라Potala궁과 비슷하여 ‘작은 포탈라’라고도 불리는 틱세 곰파는 15세기에 건축되어진 것으로 한때는 군사요새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 이후 수백 년에 걸쳐 법당과 요사체들이 증축 되면서 지금의 규모를 갖추게 된 것이다.

이곳 2층에는 화려한 보관으로 장식된 미륵부처님의 상호가 법당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가부좌로 앉아계신 부처님의 하체는 1층에 있고, 건물을 관통하여 상체만 2층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1층은 출입을 금하여 들어갈 수가 없었다.

높이가 14m이고, 미간 사이의 백호가 소라 껍데기로 되어 있으며, 커다란 장신구와 세밀한 그림을 그려 넣은 보관을 쓰신 모습이 서글서글하고 시원한 존안이다.

│성지(라마유르, 알치 곰파)순례, 그리고 휴식

 

 

 

아침6시, 일정이 시작되기 전에 산책을 나선다.

9시에 숙소에서 출발인데, 시장구경을 하다보니 시간이 임박했다.

숙소까지는 차로 20분 거리이다.

로터리에 가면 택시가 대기되어 있다고 하나 워낙 오던 길을 되돌아가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진행방향으로 걷기 시작한다.

제일 먼저 손을 들어 세운 차량은 야채를 배달하는 차다.

게스트하우스 명함을 보여주니 알았다고 하여 타려고하니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한다.

마음이 바쁘던 차에 아파트에서 나오는 차가 있어 택시인줄 알고 세우니 출근하는 군인장교의 차였다.

명함을 보여주고 급하다고 하니 ‘OK!’ 타라고 한다.

모르는 길을 헤매며 숙소 앞에 도착하여 100루피 짜리 새 돈을 내미니 ‘NO!’라며 사양한다.

고마운 마음에 몸에 지니고 있던 악세사리와 펜을 건네고 감사하다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다행히 일행들이 식사를 마치고 출발하기 직전이어서 급히 식당에서 토스트와 삶은 계란을 챙겨 버스에 올랐다.

오늘 일정은 어제와는 다른 반대방향에 있는 라마유르 곰파와 알치 곰파다.

레에서 3시간을 걸쳐 가야하기 때문에 버스의 앞자리에 앉았다.

버스는 인더스 강의 굽이치는 물결을 따라 계곡을 향해 달린다.

인더스 강의 강줄기가 한쪽은 파키스탄으로 흐르고, 다른 한쪽은 중국으로 흘러 들어간다.

중간 중간 넓은 바위 위에는 대포가 설치 되어있고, 군인들이 상주하는 모습이 보인다.

옆에 앉은 티벳 스님이 사진을 보여 주시며 겨울에는 이 강이 정말 맑고 깨끗했다고 설명해 주신다.

라마유르 곰파는 레에서 125Km 떨어진 해발 3510M의 고산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라마유르로 향하는 ‘잘레비Jalebi’라는 고갯길은 우리나라의 한계령처럼 구불구불하다.

마침내 도착한 ‘달의 계곡’이라는 곳에 라마유르 곰파가 자리하고 있다.

티벳 불교전승에 의하면 붇다 생존 시에는 맑은 호수였는데, ‘먼 미래에는 호수가 사라지고 절이 들어 설 것이다’고 한 아라한이 예언하였다고 한다.

라마유르 곰파는 10세기경 라다크 왕의 명령으로 린첸 잔포Rinchen Zanpo스님이 창건했다.

그 후 16세기에 이르러 나병에 걸린 라다크 왕이 스님들의 도움으로 병을 치료하고 고마움의 뜻으로 곰파를 스님들에게 보시했다고 한다.

왕은 사원을 보시하면서 세금을 면제 해 주고 곰파 주변을 성역화 하여 범죄자라 할지라도 곰파 안에서는 절대 잡아 갈 수 없도록 했다고 한다.

때문에 라다크 사람들은 지금도 이곳을 ‘자유의 장소’라고 부른다.

곰파를 둘러싼 구석구석에는 마니차가 설치되어 있어서 계속하여 ‘옴 마니 반메훔’을 염송하며 거닐게 된다.

전성기 때 이곳 라마유르 곰파에는 400여명의 스님들이 생활 했지만 지금은 20~30여명의 스님들만이 기거하고 있다.

그러나 3월과 7월경에는 100여명이 넘는 스님들이 모여 함께 기도하며 가면 춤을 추는 축제가 열린다.

3월은 지루한 겨울의 끝자락이고, 7월은 짧은 여름의 한복판이다.

혹독한 자연환경을 이겨내며 묵묵히 겨울을 보내고 있는 라다키들을 위로하기 위해, 그리고 짧은 여름의 아름다움을 찬탄하며 기쁨을 나누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레에서 스리나가르 쪽으로 70Km떨어진 오지마을이다.

인더스 강변과 맞닿아 있는 이곳에 10세기 말 린첸 잔포 스님이 건립한 알치 곰파가 숨어 있다.

이곳은 법당 6개중 대웅전 격인 두캉과 숨첵, 만주리라캉, 로트사바라캉 만을 개방하고 있다.

좁은 실내에는 5.18m의 관세음보살 입상이 한 면을 높이 차지하고 있었고, 맞은편에 문수보살 입상, 그 곁에 미륵불 입상이 모셔져 있다.

우리들의 개념과는 달리 법당이라고 하지만 불상들이 모셔진 방이었다.

그 옆의 법당에 가서야 우리는 간단한 법회를 할 수 있었다.

우리가 처음 보게 된 건물은 숨첵이라는 목조기둥의 3층 건물로 그리스 신전의 기둥처럼 섬세한 조각들로 장식되어 있다.

특히, 건물 입구 위에 삼각 틀에 조각 된 문양들은 법당의 불상보다 훨씬 더한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린첸 잔포 스님은 인도와 카슈미르의 17년간 유학파로 티벳에 돌아와 왕의 후원을 받아 많은 경전을 번역하고,

카슈미르 예술가 32명을 초청해 이 사원을 지었다고 한다.

건물뿐만 아니라 내부 벽면에도 천문도와 불보살상 등 각종 신장상 등이 그림으로 표현되어있고,

입상의 법의에 그려진 그림들 역시 그 섬세함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린첸 잔포 스님은 알치 곰파 외에도 라다크와 서티벳에 108개의 사원을 건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치 곰파의 벽화들은 카슈미르와 간다라 미술의 절묘한 만남으로 아잔타 석굴 벽화와도 종종 비교되고 있다.

대웅전격인 두캉은 알치 곰파의 보석 격으로 알치 곰파 중 그 규모가 가장 크다.

목조불상인 비로자나불(Vairocana)을 모시고 있는데, 이것은 1000년동안 살아남은 현란한 세부묘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벽화 6개중 만다라(Mandara)와 ‘왕과 왕비’라는 제목의 벽화도 있다.

라다크의 다른 곰파들과는 달리 알치 곰파는 잔스카르 지역 오지의 평지에 위치하여 이슬람교도들의 침입 때도 눈에 띄지 않고 무사히 지켜졌다고 한다.

안타까운 것은 흙벽으로 이루어진 건물의 벽들이 추운 겨울에는 꽁꽁 얼었다가 여름 한철 해동되니 자연스레 금이 가고 약해진다는 것이다.

한 쪽 벽의 벽화가 유실되어 보수를 하여 비슷하게 그림을 덧 씌워 놓은 것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만약 라다크를 방문하게 된다면 최우선으로 가 보아야 할 천년고찰이라 생각 된다.

4개의 법당을 모두 둘러보고 사진을 찍지 못한 아쉬움에 그림엽서를 사들고 나선다.

마당의 낮은 담장 너머로 멀리 작은 수력 발전소가 보인다.

말라야 산맥에서 눈이 녹아내리는 물을 이용하여 전기를 생산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인도의 수도인 델리보다 물 사정이 넉넉했다는 생각이 든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일심각 │ 정토마을 라다크의료봉사단 봉사자, 제주포교사단 2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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