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송아!
혈관이 터져 뻘건둥이가 되어 버린 아이.
몸둥이는 퉁퉁부어 부풀어 있고 눈 빛은 이리저리
분주히 분위기를 감지하느라 바쁘다.
해맑은 미소 애써 지우며 초롱초롱 눈빛 마주치며 ‘ 스님 괜찮을 거예요 ’ 하며
씩 웃는다.
어린 가슴에 얼마나 큰 두려움의 파도가 밀려오고 있을까...
이제 더 이상 그 무엇도 남아 있지 않다.
항생제, 항암제, 현대의학은 혜송이에게 그 무엇도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한
다.
온 몸 속에 암 덩어리도 뒤덮여 아이가 숨을 몰아 쉰다.
그래도 희망의 끈을 녹지 않았던 아이
폐렴만 낳게 된다면 폐렴만..
죽음으로 부디 도망치고 싶은 강한 욕구를 일으킨다.
살수만 있다면 이 세상 어디에든....
정토마을에서 약 7개월 아이는 죽음을 인지하지 못하였다. 아니 죽음을 철저히 부정
하고 싶어했다.
태어나서 20년 동안 가장 행복했던 200일.
‘ 스님 저 좀더 어떻게 행복하게 더 살고 싶어요. ’
내가 머무는 세상이 너무 버거울 때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버거운 고통이 엄습 해
온다.
나는 그것들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어디론가 무엇에 의존하여 피하거나 잊어버리고 싶어진다.
고통으로부터 도피
내 가슴을 쪼여오고 내 어깨를 억 누르는 지금의 현실들... 때로는 숨이 턱까지 차
오른다. 질식할 것만 같은 순간 순간들... 나는 차를 몰고 도망친다.
기대보면 바다가 나오고 자그만 암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참 유일한 나만의 안식처. 영혼의 안식처이다.
어는 누구도 지금 내 심정을 터 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몸서리치는
이 고통의 깊이를 이해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너무나 외롭고 고독하여 힘겨운 길인 것 같다.
밀려오는 고통에 빠져 드는 것이 너무나 두려워 분주한 일상으로 자신을 마취시켜
버린다.
인간은 누구나 다 그러하듯이 고통으로 느껴오는 일들을 거부 하는 것 같다.
밤이 있음으로 낮이 존재 한다는 이론은 이해하지만 때로는 이런 개념 조차도 무색
할 때가 많다.
죽어 가는 사람들 곁에서 가지 각색으로 변화하여 일어나는 고통의 조건들..
느끼고 싶지 않을 때 그대로 스며 들어 온다.
그것을 인지하고 싶지 않아 나는 그것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일어 날때도
있다.
죽음으로 이어지는 환자들의 고통을 피상적으로 이해하거나 느끼지 말자 누구도 그
럴 자격은 없다. 육체가 질병으로 고통의 늪속으로 무너져 내리고 세상으로부터 내
존재가 점점 작아져 한점 티끌로 허공에 흩어짐이 느껴온다.
그 두려움과 절망 누구도 말 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자리에 선 자만이 느낄 수 있
는 감정이기 때문에 지식으로 지혜로 알음알이로 공감 할 수 없다.
많은 수행자들은 이러한 고통들을 너무나 쉽게 말하고 느끼는 것처럼 이야기 한다.
나는 그런 사람을 만날 때 그냥 미소 짖는다.
가끔 때로는 죽음을 수용하고 사후를 준비하며 죽음에 순응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을 조금 덜 고통스러워 한다.
승?속을 막론하고 생?사가 진정 둘이 아닌 까닭에 말 해 보라.
시절 인연따라 다 하는 날 우리의 몸은 티끌로 돌아간다.
우리의 생명의 촛불 지나가는 바람에도 꺼져 버린다.
삶은 죽음으로 몰아가고 죽음은 삶으로 몰아간다.
우리는 풀 끝이 이슬로 맺혔다 해가 나면 사라지듯
시절을 만나 잠시 꽃을 피우다가도 갑자기 시들어 말라 버린다.
내 존재는 환상처럼 어디로 사라지고
내 흔적은 바람으로 허공을 가른다.
사람들이여 생사를 안다고 말하지 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