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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죽음 앞에 선 사람,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
작성일
2012-04-18 14:09:10
조회수
2130

죽음 앞에 선 사람,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
[호스피스 병동에서]
2012.01.11 14:57 입력 발행호수 : 1129 호 / 발행일 : 2012-01-11















▲ 능행 스님의 호스피스 병동에서


바람이 심하고 유난히 추운 새해가 되면 아릿한 아픔과 함께 생각나는임종환자 한 분이 있다. 희미한 전등불 아래 스산한 바람이 숭숭 소리 내며 지나는 어느 병실에서 그의 마지막 삶에 동행하며 기억하게 된 ‘금강경 선현기청분.’


“세존이시여, 보리심을 발하여 보살의 길로 들어선 선남자(善男子)와 선여인(善女人)들은 그 마음을 어떻게 머물러야 하고 어떻게 수행해 나가야 하며 어떻게 다스려야 합니까?”


12년 전 이야기다. 어느 겨울날 나의 등 뒤에서 무뚝뚝한 목소리가 등을 쳤다.


“스님. 제가 지금 어떻게 마음을 내야 할까예? 그리고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꺼?”


가던 걸음 멈추고 돌아보니 얼굴이 노랗게 물든 거사님께서 온몸으로 묻고 있다. 참으로 절절하고 간곡한 그 물음에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는 듯 했다. 다가가서 거사님 곁에 말없이 앉았다. 담도암 말기의 거사님은 당시 48세로 중·고등학생 두 딸과 늙으신 어머니 그리고 아내와 함께 특수작물을 재배하며 살았다.


얼굴이 노랗게 되어 병원에 왔는데 담도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는 것이다. 특별한 증상도 없었고 평소 너무 건강해 자신이 병에 걸릴 것이란 예측은 한 번도 안 해봤다고 했다. 그분은 어머니를 통해 불교를 알고 ‘금강경’을 독송하게 됐다며 수보리의 질문을 반복해 물었다. 나는 그 인연으로 그분의 마지막 삶에 동행하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 첫 만남이었지만 어색함 없는 침묵으로 한참을 앉아있었다. 그러다 거사님이 말문을 열었다.
“스님. 저는 어무이 때부터 불교를 안 믿어습니꺼. 우리 스님은 늘 ‘금강경’을 독송하라 했는데예. 그래서 ‘금강경’ 밖에 읽은 게 없는데 지는 우찌 되는겁니꺼.”


“금강경에 ‘어떻게 마음을 내야하고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라는 구절요. 수보리가 부처님께 안 묻습니까? 스님도 알지예. 스님께서 말씀 좀 해주이소. 저는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마음을 내야 합니까? 병원에서 할 것도 없고 집에 가서 잘 쉬라 안합니까. 집에 가서 쉬라는 말은 못 고친다는 말이랍니다. 사람이 이렇게 간단하게 죽을 수 있다는 것이 말이 되냐는 말입니더.”


나는 거사님께 살면서 지금까지 자신의 죽음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는지 물었다.


“스님은 참 답답한 소리 하십니더. 먹고살기 바쁜데 누가 그런 생각 다 합니꺼? 주변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도 내 일 될 거라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 어디있겠냐는 말입니더. 담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디에 붙어있는 건지도 몰라예.”


환자는 참 많이도 울었다. 자신이 죽어야한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 그리고 인정할 수 없다는 단호함, 그렇지만 길이 없어 더욱 차오르는 막막함까지. 거사님이 분노와 함께 울분을 쏟아내자 같은 병실에 입원한 환자 모두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는 말이 없다.


“3개월간의 투병 중에 도반이나 아는 스님 한분도 찾아온 적이 없습니더. 죽을병이 드니 지푸라기 한 올도 잡을 것 없네예.”


서럽고 허망한 마음을 허탈한 미소 속에 담아내면서 염불로 가슴을 열어가는 그분에게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은 그저 곁에서 그분 말을 들어주고 마음을 읽어주며 힘들지 않게 염불들 따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 그리고 통증과 각종 불편한 증상, 감정들을 보살펴드리는 것뿐이었다.


그분과 3주간의 동행, 그리고 마지막 여정을 보내고 있는 많은 불자들의 현실과 죽음. 또 종교가 주는 의미에 대해 깊이 숙고한 결과가 오늘날 정토마을이다.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해 자신의 죽음을 이해하고 수용하며 삶과 작별하기까지 환자들의 입장에서 적절한 대응을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죽음 앞에 서게 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적어도 그분들이 외롭지 않고 평온한 가운데 마지막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은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아기가 태어날 때보다 더 깊은 자애와 연민으로 지극한 돌봄이 요구되는 시기야 말로 사람들이 죽음 앞에 설 때가 아닐까.


죽음으로 가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죽음 앞에 서게 되면 이토록 슬프고 고통스럽게 하는가? 생명이 삶을 타고 죽음의 바다로 흐르고 있으나 그 바다에 가닿은 시간은 아무도 모르며 누구도 막을 수가 없다.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應無所住 而生其心).’ 부처님의 말씀을 되뇌어 본다.
지금도 나는 종종 불자들을 만나면 묻는 말이 있다. “불자님. 죽음 앞에 서게 될 때 마음을 어떻게 내야하며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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