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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호스피스활동이 곧 수행(2010년 4월 한국일보) [ 등록일 : 2012-02-21 , 조회수 : 1,5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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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행 스님 "고통없는 죽음… 내겐 호스피스 활동이 곧 수행"           자제병원 건립 위해 '천일애 행복기도운동' 펴는 능행 스님       능행스님이 호스피스 병원인 자제병원을 세우기 위한 '천일애(愛) 행복기도운동'을 시작한다. 능행 스님은 1996년 충북 청원군 구녀산 자락에 정토마을을 세우고 말기 불치병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불교계의 대표적 호스피스 활동가. 2007년엔 울산 울주군에 마하보교육원을 열고 불교식 호스피스 교육과 명상 수행을 이끌고 있다. 2003년 출간돼 50만부가 나간 의 저자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서 죽음은 너무 치열하고 고통스러운 일이에요. 분노하거나 불안해하지 않고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천일애 운동은 자제병원 건립을 위한 모금 운동이지만, 죽음에 대한 그리고 삶에 대한 성찰을 위한 운동이기도 합니다." 천일애 행복기도는 아침에 잠에서 깰 때, 오후 1시, 잠들기 전 등 하루 세 차례 3분씩 명상기도를 하며 자신의 내면을 정화하는 운동이다. 동참을 서약한 이들은 매월 3만원씩 3년 간 모두 108만원을 기부해 자제병원을 짓는데 힘을 보태게 된다. 70병상 규모의 자제병원 건립에는 80억원 가량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능행 스님은 21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내겐 호스피스 활동이 곧 수행"이라고 했다. 그는 호스피스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이렇게 얘기했다. "경전에 기록된 부처님 말씀의 절반은 세상이 고통이라는 것이고, 나머지는 그 고통을 벗어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나는 한 암환자의 죽음을 통해 그 말씀을 깨닫게 됐어요. 그래서 말기 환자들을 찾아가 이들이 삶의 마지막 순간에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것이 수행자의 본분이라고 여겼습니다."  능행 스님은 그러나 "나도 사람인 만큼 이 일(호스피스)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도망치고 싶었던 적이 많았지만 이것이 내 수행의 길임을 깨달은 순간, '삶이 공허가 아니라 무상(無常)'이라는 가르침의 뜻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불교 호스피스의 차이점을 "일방적인 베풂이 아니라 봉사자와 환자 모두에게 철저한 자기 수행이 된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호스피스 활동은 곧 "죽음을 앞두고 환자와 가족, 봉사자가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사성제(불교의 네 가지 진리)를 퍼즐 맞추기를 하듯 풀어가는 자기 정화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능행 스님은 최근 생의 마지막 순간에 삶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엮어 (휴 발행)을 냈다. 그는 책 제목에 대해 "나는 어떻게 존재하고 왜 살아가는지를 지금 이 순간 스스로 답을 얻으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유상호 기자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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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마더 테레사 집' 짓는 능행 스님 (2010년 4월 오마이뉴스).. 컨텐츠이미지 [ 등록일 : 2012-02-21 , 조회수 : 2,1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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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마더 테레사 집' 짓는 능행 스님               정토마을 자제병원 건립 천일애 행복기도 대법회   ▲ 대한불교 조계종 전국선원 수좌회 대표인 충주 석종사 혜국큰스님   ⓒ 임윤수  타심통(불교 용어, 남의 마음속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신통한 능력)이나 천안통(불교 용어, 세간 일체의 멀고 가까운 모든 고락의 모양과 갖가지 형과 색을 환히 꿰뚫어 볼 수 있고, 자기와 남의 미래세에 관한 일을 내다볼 수 있는 신통한 능력)은 아니어도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진지한 마음이 새싹처럼 돋아나고 있었고, 간절한 바람이 벚꽃만큼이나 환한 표정의 얼굴에서 활짝 피어나고 있었으니 사람들이 무엇을 애절하게 기도하고 있는지를 아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18일은 간절한 바람과 애절한 기도가 담긴 마음들이 모여 완화전문병원 자제병원을 건립하는 희망의 씨앗, 사랑의 씨앗을 파종하는 날이었습니다. 앉지 않고, 눕지 않겠다는 각오로 건립을 계획하였고, 탁마의 발걸음으로 이랑을 일궈 오듯 준비해 오다 따뜻한 봄철을 맞아 씨앗을 뿌리는 농부의 마음으로 열었을, '자제병원 건립 천일애 행복기도 대법회'가 열린 경남 언양 정토마을 '언양 마하보디교육원'엘 다녀왔습니다.  장거리 여행, 버스 얻어 타니 여유 만만 ▲ 자제병원 건립 천일愛 행복기도 대법회  ⓒ 임윤수   충남연기 서면에 있는 학림사에서 대형버스를 대절해 단체로 법회에 참석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차 좀 얻어 탈 수 있느냐고 연락을 드렸습니다. 전화를 받으신 주지스님께서 누구인지, 뭐 하는 사람인지도 묻지 않고 기꺼이 한자릴 내주시겠다며 차를 탈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알려주십니다. 혹시 모르니 알고 있으라며 연락처까지 꼼꼼하게 챙겨주십니다.  차를 탈 수 있는 조치원역까지 가기 위해 아주 오랜만에 대전역에서 새벽 기차를 탔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기차를 기다리며 플랫폼에서 맞는 아침공기는 알싸할 만큼 상쾌합니다. 조치원역에 도착해 조금 기다리니 큼지막한 글씨로 '학림사'라고 쓴 종이를 앞 유리창에 붙인 대형버스가 도착합니다.   버스로 다가가니 '대전서 오셨느냐?'며 스님께서 먼저 물어 주십니다. 간단하게 인사를 드리고 버스로 올라가 뒤쪽 빈자리를 찾아 앉았습니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몇 가지의 음료수와 레몬 그리고 과자까지 담긴 봉투를 하나씩 나눠줍니다. 탈 사람은 다 탄 것 같은데 출발을 하지 않더니 허겁지겁 배달된 어른 주먹 크기의 말랑말랑하고 따끈따끈한 떡을 하나씩 또 나눠줍니다. 차를 몰고 운전하며 가는 길이라면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횡재와 여유를 만난 기분입니다.     차가 출발하는 것을 확인하고는 의자의 등받이를 뒤로 젖히고 혹시 입이라도 헤하고 벌어질까봐 미리 준비해 간 마스크를 쓰고 깊숙하게 누웠습니다. 먼 거리를 가는 중이지만 쉬는 시간이 되니 여유 만만입니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났지만 버스는 아직도 고속도로를 달리는 중입니다. ▲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 임윤수 정토마을 마하보디 교육원에서 열리는 천일애 행복기도 대법회  조치원역에서 출발해 거반 4시간이 걸려서 목적지인 정토마을 언양 마하보디교육원에 도착하니 이미 식전행사가 한참입니다. 통곡을 하듯이 법고를 울려주는 하유 스님도 보이고, 이승과 저승의 간이역 같은 정토마을에서 역장역할을 해가고 있는 능행 스님도 분주하십니다. 천안함 침몰 사건이 진행 중이어서 그런지 지난 대법회 때와는 달리 조용함과 엄숙함이 밑바탕에 깔린 분위기입니다.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거나 시신마저도 확인되지 않은 영령들의 원혼을 위로하려는 듯 꾀꼬리 소리처럼 맑다고 기억하고 있던 오카리나 소리는 두견새의 울음소리로 들렸고, 색소폰 소리는 진혼곡처럼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현란하기까지 했던 하유 스님의 법고소리도 통곡 같은 울림이 되어 허공으로 퍼지고 있었습니다.  2010년 4월 18일, 정토마을 언양 마하보디교육원에서 야단법석으로 펼치는 천일애 행복기도로 건립하려고 하는 '완화의료전문 자제병원'은 치유될 수 없는 질병으로 위기에 처한 이들의 고통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완화 시켜 주기 위해 전문 완화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완화의료전문병원입니다.  현대적인 의술을 포함해 어떠한 수단이나 방법으로도 치유될 수 없는 사람들, 멀쩡한 정신으로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심신의 통증과 고통을 덜어주고자 하는 전문 병원입니다.  육체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는 육체적 통증을 완화시켜 주고, 심리사회적 또는 영적인 측면에서 불안해하거나 두려움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심리적이거나 정신적인 고통을 완화시켜 줌으로 환자와 그 가족들의 삶의 질을 조금이라도 향상시켜주고자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병원입니다.  '완화의료'라는 말이 조금은 생소하기도 하지만 귀에 익숙해진 호스피스와 같은 의미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완화의료'를 구현하기 위해 정토마을 언양 마하보디교육원 옆에 70병상 규모의 자제병원을 건립하기 위한 내디딤이자 씨앗뿌리기로 조계종 전국선원 수좌회 대표인 충주 석종사 혜국 큰스님을 모시고 '자제병원 건립 천일애 행복기도 대법회'를 열어가는 중입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전국선원 수좌회 대표인 충주 석종사 혜국큰스님의 법문  ⓒ 임윤수감로법문, 애장품 기증에 이어 후원가치 솔선해 주신 혜국큰스님  다양하게 차려진 먹을 것을 골라 편한 시간, 편안한 장소에서 맛나게 먹을 수 있는 식사를 해가며 열어가던 식전행사에 이어 2부로 예정된 대법회를 능행 스님이 매일 1시 정각부터 3분간, 1000일 동안 올릴 행복기도로 시작합니다.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에 맞춰 기도문이 1분 동안에 낭독되고, 2분 동안 침묵하며 '쉼'을 추구합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시끌벅적 했던 대법회장이 적막강산의 고요함에 빠졌습니다. 불어오던 바람도 기도에 동참을 하는지 흔들리던 나뭇가지 소리도 멈췄습니다. 짧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기도문, 길지 않지만 조금도 모자람이 없을 것 같은 침묵의 기도에 이어 식순에 따른 일련의 의식과 혜국 큰스님의 법문이 이어집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전국선원 수좌회 대표인 충주 석종사 혜국 큰스님께서는 자제병원의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능행 스님을 위시한 관계자들에게는 천군만마 같은 격려와 칭찬을 기꺼이 동참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다시 한 번 더 자비심을 낼 수 있는 발심, 아직까지 마음을 내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선뜻 마음을 낼 수 있는 채찍질 같고 마중물 같은 법문을 내려 주셨습니다.  혜국 큰스님께서는 발걸음 해주시고 법문만을 해 주신 게 아니라 당신께서 수십년간 애장하거나 소장하고 있던 역대 큰스님들의 휘호 수십 점도 건립기금에 보태라며 기꺼이 내주셨습니다. 무소유의 삶을 살아가는 출가수행자이지만 수십 년을 소장하였던 애장품, 수십만에서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서화 수십 점을 선뜻 기탁하실 만큼 자제병원의 건립을 절절하게 응원하고 계셨습니다.  먼 거리를 찾아주는 발걸음 시주에 이어 입이 떡 벌어진 만큼을 보시하시고도 후원에 대한 갈증이 남으신 듯 다달이 3만 원씩, 36개월 동안에 108만 원 납부를 약정하는 약정서도 별도로 작성해 내 접수해 주셨습니다. ▲ 혜국스님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후원한 작품들   ⓒ 임윤수  법단에서 법문으로 하셨던 말씀들을 이렇듯 그 자리에서 실천으로 보여주시니 법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의 후원동참이 이어집니다. 내 것을 챙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줄 서있는 사람들 모습은 아름다움이었습니다. 불편하게 쓰느라 조금은 비뚤비뚤한 글씨들이지만 어떤 명필보다 멋진 글씨입니다. 허공으로 들어 올려 흔들면 '행복'이라는 게 후드득하고 떨어질 것 같은 아름다운 마음이 담긴 글씨들입니다.   약정서를 먼저 쓰려고 조금은 흐트러진 군중이지만 그 흐트러짐조차도 한없이 행복하고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육원 내에 마련된 전시관에서 전시 판매하고 있는 서화나 사진을 구입해 주는 것으로 동참하고, 어떤 사람들은 이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몇 날 며칠 동안 봉사나 또 다른 동참으로 후원하고 있으니 모두가 보현보살이며 모두가 사랑의 화신인가 봅니다. ▲  약정서를 작성하고 있는 혜국큰스님  ⓒ 임윤수 ▲  약정서를 작성하고 있는 사람들  ⓒ 임윤수 천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행복의 열기로 후끈하게 열어간 대법회였기에 자제병원을 건립하는 데 필요한 터는 다져지고 주춧돌 정도는 마련되었을지 모르지만 70병동 규모의 전문 병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자제병원을 건립하려면 아직은 훨씬 더 많은 것들이 필요하기에 능행 스님은 탁발을 나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의 자비심과 관심을 탁발하고, 벽돌 한 장이나 철근 한 가닥에 소용될 후원의 손길을 탁발하기 위해 바랑하나 걸머멘 구도자의 마음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탁발에 나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싹 트고 있는 씨앗에 한 바가지의 물을 주듯이 동참하는 마음을 내주고, 자라고 있는 씨앗에 한 움큼의 거름을 얹어 주듯이 후원해 준다면 그렇게 후원해 주는 보시금은 자제병원으로 열매 맺고, 그렇게 내주는 마음은 행복으로 되어 추수 하게 될 거라 생각됩니다. 그러기에 능행스님이 걸머멘 탁발 바랑이 가는 곳곳마다 매일매일 꽉꽉 채워졌으면 좋겠습니다.    60세의 불자가 드리는 질문, 종단과 큰절들은 뭐하나?  대법회가 마무리되었으니 돌아가는 차를 놓치지 않으려면 발길을 서둘러야 합니다. 조금 기다려 주거나 전화를 주실 수도 있지만 차를 얻어 타고 간 입장에서 그럴 수는 없어 발길을 서두릅니다. 그런 마음으로 대법회장을 떠나려 하는 순간 초면의 보살님께서 하실 말이 있다고 합니다. 처음 뵙는 분이었지만 관음행(60)이라는 법명을 쓰고 계시는 보살님께서는 기사를 통해서 필자를 알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분께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비구니 한 분의 노력으로는 진력을 다해도 힘든 불사이지만 종단이나 큰절에서 추진을 하면 자제병원 같은 시설을 건립하는 게 훨씬 수월할 것 같은 데 왜 못하고 있는 건지 답답하다고 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종단과 큰절들은 뭐하고 있느냐'고 묻는 반문이었습니다.   여느 종교에 뒤처지거나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이런 사회사업에 관심 좀 가져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습니다. 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부터 능행 스님의 자제병원 건립 불사를 지켜보고 있다는 관음행 보살께서는 지켜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로 진력하고 있는 능행 스님의 노력과는 달리 방관하듯이 무관심한 불교계에 대한 불만이며 할(불교 용어, 선원에서, 위엄 있게 꾸짖는 소리)이었습니다.  '종단과 큰절들은 뭐하고 있느냐'며 반문하고는 있었지만 환갑을 앞둔 보살님께서는 종단이나 큰절에서 이런 분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거나 후원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버스에 몸을 실으니 남는 것은 여유고, 즐길 수 있는 것은 만개한 벚꽃입니다. 휙휙 지나치는 차창 밖으로 사람들 얼굴에서 보았던 진지한 마음과 애절한 바람이 자제병원으로 바뀌어 나타납니다.                   임윤수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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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기도하는 능행 스님(2010년 4월 울산뉴시스) 컨텐츠이미지 [ 등록일 : 2012-02-21 , 조회수 : 1,9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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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기도하는 능행 스님     불교계 최초 독립형호스피스 정토마을 이사장 능행 스님이 18일 울주군 상북면 양등리 정토마을 언양 마하보디교육원 앞마당에서 열린 '혜국 큰스님 초청 자제병원 건립 천일 愛 행복기도 대법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재)정토사관자재회(회원 1만 3000여명)가 주최한 이날 행사는 앞으로 1000일간의 병원 무사 건립과 40억 원 가량 드는 병원건립비 모금을 위해 열렸다.  자제병원은 70병상 규모로 2012년 개원하는 국내 최고수준의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병원이다.                                                                                 【울산=뉴시스】조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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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MBC e-세상이야기] 능행스님 방영(2009년 12월) 컨텐츠이미지 [ 등록일 : 2012-02-21 , 조회수 : 1,4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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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마을'서 말기 암환자 돕는 '살아있는 약사보살' 능행.. 컨텐츠이미지 [ 등록일 : 2012-02-20 , 조회수 : 2,0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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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토마을'서 말기 암환자 돕는 '살아있는 약사보살' 능행스님      "고통과 아픔의 죽음이 아닌 여유로운 죽음이 더 많아졌으면…" 책상 한편에 약 봉지가 수북했다. "웬 약이 이렇게 많으냐"고 묻자 능행(能行·49)스님이 말했다. "2003년에 말기 암환자를 돌보다 감염됐어요. 환자가 뽑아놓은 주삿바늘에 찔렸거든요. 더러 있는 일이에요."이 비구니는 작년 8월 급성 저혈압으로 쓰러져 심장이 멎을 뻔 했다. 올 5월까지 병원을 들락거렸다. 그는 "과로로 죽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하고 느꼈다. 무슨 일을 하기에 스님이 과로사까지 생각했을까? 환자들은 그를 살아있는 '약사보살'이라 부른다. 1999년 그가 지은 호스피스 '정토마을'에서 1000명이 넘는 말기 암환자들이 생을 마쳤다. 11일 창단되는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의 2000여 호스피스 중 1500명이 그를 거쳐갔다."누가 시킨 일이었다면 그이와 원수가 됐을 거야. 일이 힘드니 중이 이렇게 늙었지." 그런데도 호스피스 일을 멈출 수 없다고 했다. "나도 궁금해. 아마 전생(前生)에서부터 이 일을 해왔나 봐." 10년 전 충북 청원군 미원면에 정토마을이 생길 때 20가구 주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시설을 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입구에 개 70마리를 키우고 트랙터로 길을 막기도 했다. 나중에는 군 주민들까지 확성기를 들고 쳐들어와 스님을 고소했다. 시위는 그 뒤로도 3년간 계속됐다. 스님은 30여 차례 경찰과 검찰에 불려갔다. "혐오시설이라고 무조건 반대할 땐 화도 났지만 나중엔 '아,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죽음을 두려워 하는구나'하고 오히려 이해하게 됐어요." 1993년 서른셋의 나이로 출가한 그 역시 죽음이 두렵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이듬해 한 신도 남편을 병문안 갔다. 췌장암에 걸린 환자는 그 후 닷새 만에 사망했다. "복수(腹水)가 차 배만 불러 있고 새까맣게 타 있던 모습이 너무 무서웠어요.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그때 처음 본 거예요."그때 그는 '세상은 고통의 바다(苦海)'라는 부처님 말씀을 이해했다.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암 환자들을 보며 그는 "'저 고통스러운 사람들을 어찌하면 좋을까' '죽음의 질을 좀 더 나아지게 할 수 없을까' 생각했다"고 했다. 부처가 세상에 들어가 깨달음을 얻었듯 그때부터 능행도 절 밖으로 나갔다. 첫 방문지는 소록도였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코가 으깨진 사람들도 웃더라고요. 이 안에서도 미소가 있고 행복이 있구나, 느낀 거예요."알코올 중독자, 지체장애자, 불치병 환자를 찾아 오웅진 신부의 음성 꽃동네에 갔다. 그곳을 찾은 스님은 능행이 처음이었다. 더 힘들고 아픈 사람들을 찾아 부산 의료원 행려 병동까지 내려가 먹고 자며 환자들을 돌봤다.▲  얇디 얇은 이불이라지만 말기 환자들에게는 그 무게감이 천근만근처럼 느껴진다. 스님은 "세탁을 자주 하다보니 이불도 금세 헐어 버린다"며 쌀쌀해지는 날씨를 걱정하신다. / 신현종기자 능행은 가난한 사람들은 편안하게 죽을 곳도 없다는 걸 알았다. 1997년 한 천주교 병원에서 폐암으로 숨져 가던 스님이 "스님들 편히 죽을 수 있는 병원 하나 세워달라"고 유언을 남기자 호스피스 시설을 만들기로 했다. "한 편의 소설이었다"는 탁발(托鉢)이 그때 시작됐다. 동냥을 하러 혈혈단신 전국을 떠돈 것이다. "절에서 수행은 언제 하느냐"고 묻자 "동냥 다니는 게 나에게는 수행이었다"고 했다.1년에 15만㎞씩 전국의 절과 기업인, 시장 바닥까지 가리지 않고 뛰었다. 1000원을 내놓는 상인들부터 100만원씩 도움을 주는 큰 스님들까지 우선 2200만원을 모아 지금의 땅 계약부터 했다. 2년에 한 대씩, 지금까지 5대를 폐차시켰다. 2000년 10월 조립식 건물로 정토마을을 개원할 때까지 들어간 3억원을 그렇게 모았다. 현재 15개 병상에 직원 10여명이 있는 정토마을은 환자 가족들의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1년이면 100여명의 말기 환자들이 이곳에서 마지막을 보낸다. 그 많은 죽음을 지켜보면 어떤 깨달음이 올까? 스님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모든 죽음을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뿐"이라고 했다."80이 돼도 난 아직 아니라고 하지 '그래, 나 이제 갈 때 됐다'고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왜 지금 죽어야 하는지 모르고 조금만 더 살고 싶다고 울부짖을 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마음 아파요." 그는 돌이켜 보기도 싫을 만큼 '힘든 죽음' 뒤에는 모두 돈이라는 욕망을 놓지 못한 공통점이 있다고도 했다. 스님은 "15년간 여유롭고 흔쾌하게 죽음을 받아들인 사람은 채 20명이 안 됐다"고 했다."평생 화장실 청소와 바느질로 자식을 키운 70대 할머니가 있었어요. 아름다운 세상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는지 손 흔들고 가시더라고요. 자제분들과 같이 손 흔들어 드렸어요. 경이로웠어요." 4년 전엔 40대 남자가 위암 3기 때 들어왔다. 치료비 부담으로 남은 가족에 누가 될까 아무 치료도 않고 마지막을 보내러 왔다고 했다. 그는 오히려 수능을 앞둔 고3 딸에게 문병도 못 오게 하며 전화로 응원했다."우리 딸 파이팅! 우리 딸 잘할 수 있어! 아빠는 잘 있으니까 수능 끝나고 보자." 수능 당일 그는 죽어가면서도 사력(死力)을 다해 전화기를 붙잡았다. "우리 딸 오늘 힘내야 돼? 아빠는 괜찮으니까 수능 끝나면 바로 내려와." 내색하지 않고 딸을 응원한 그는 시험이 끝나갈 무렵 "스님, 제가 할 일은 이제 다 끝났네요"란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능행은 "자식 사랑하는 마음으로 책임을 다했기 때문인지 표정도 평온했다"고 했다.스님의 바람은 한 가지다. 고통과 아픔으로 범벅된 죽음이 아닌 맑고 여유로운 죽음이 더 많아지는 것이다. 2005년 베스트셀러가 된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이별이지는 않게'라는 호스피스 사례집도 그래서 펴냈다. 청각 장애인 아버지를 뒀던 능행은 의사가 되려 했다. 아버지처럼 몸이 불편하고 치유할 수 없는 질병을 가진 사람을 고쳐주고 싶었다. 그는 "의사는 아니지만 치유할 수 없는 환자를 돌봐주고 있는 점에서는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에서 또 다른 일을 벌이고 있다. 호스피스를 양성하는 교육 기관과 함께 정토마을에서 수용할 수 없었던 더 많은 환자를 위해 병원을 지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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