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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는 깨달음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구제(2009년 7월 중앙일보).. 컨텐츠이미지 [ 등록일 : 2012-02-20 , 조회수 : 1,7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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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는 깨달음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구제    - 제 24회 불이상 시상식      여성불자 모임인 ‘불이회(不二會·회장 홍라희)’가 주최하는 ‘제24회 불이상 시상식’이 6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열렸다. 연구 분야에선 인도· 서역·중국·한국 등의 불상을 비교 연구하며 업적을 쌓고 있는 임영애(경주대 문화재학부) 교수와 전문적 연구를 통해 한국 선불교를 해외에 알리는 공로를 인정받은 안준영(캐나다 토론토대학 종교학과·동아시아학과) 교수가 공동 수상했다. 실천분야에선 말기 환자를 위한 호스피스 활동의 불교계 선구자인 능행(정토사관자재회 이사장) 스님이 수상했다. 홍라희 회장은 인사말에서 “‘불이상’은 한 재단이나 개인이 주는 상이 아니라,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함)의 심정으로 함께 마음공부를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불교계 인재양성의 필요성을 절감해 1985년에 제정한 상”이라며 “수상자분들이 앞으로 더욱 수승(殊勝: 특별히 뛰어남)한 활동을 펼쳐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수상 소감에서 임영애 교수는 “불교미술에 입문한 후 나를 사로잡은 화두는 ‘한국 불교 조각의 정체성’이었다”며 “인도와 실크로드, 중국과 한국 불상 연구를 거듭할수록 하나씩 퍼즐을 맞춰가는 심정이다. 이제 서서히 그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고 밝혔다.   안준영 교수는 “중국 불교와 일본 불교에 비해 한국 불교는 서구 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 선서(禪書)의 영어화 작업에 매진하겠다”고 다짐했다. 능행 스님은 “출가한 승려가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상을 받으니 부끄럽다”며 “호스피스 활동을 하면 할수록 ‘우리 인간은 죽어가면서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걸 절감한다”고 말했다.   ‘불이회’는 한국 불교계의 활성화와 여성불교, 재가불교의 위상을 정립하고자 74년에 설립, 85년부터 불이상을 제정해 시상하고 있다. 매년 연구와 실천, 2개 분야에서 수상자를 선정한다. 올해 심사는 정병조 동국대 교수, 김종서 서울대 명예교수, 권기종 동국대 명예교수, 홍라희 불이회 회장, 윤용숙 불이회 명예회장이 맡았다. 수상자에게는 각각 상금 1000만 원이 수여된다.                                                                                 백성호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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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행스님, 제24회 불이상 수상(2009년 6월) 컨텐츠이미지 [ 등록일 : 2012-02-20 , 조회수 : 1,6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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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불이상 임영애, 안준영 교수, 능행스님              여성불자 모임인 불이회(不二會·회장 홍라희)가 제정한 불이상 제24회 수상자로 연구분야에 임영애(경주대 문화재학부·사진左) 교수와 안준영(캐나다 토론토대학 종교학과 동아시아학과·中) 겸임교수가, 실천분야에는 능행 스님(정토사관자재회 이사장·右)이 선정됐다.   임 교수는 인도·서역·중국·한국의 불상을 망라해 다양하면서도 심도 있는 연구 성과를 낸 공로를, 안 교수는 선학(禪學) 전공자로서 한국의 선사상을 해외에 알리고 서양에서 한국 선학의 전문적인 연구를 진행한 이력을 인정받았다.    능행 스님은 불교계에서 말기환자의 임종 문제를 종교적인 방법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 불교계의 선구자로 2000년 교계 최초로 독립형 호스피스센터 ‘정토마을’을 개원한 뒤 호스피스 활동을 벌여왔다.    불이회는 한국 불교계 활성화와 여성불교, 재가불교의 위상을 정립하고자 1974년에 설립됐으며, 85년부터 불이상을 제정해 시상하고 있다. 매년 연구와 실천, 2개 분야에서 수상자를 선정한다.    수상자에게는 각 분야별 1명씩 상금 1000만원이 수여된다. 시상식은 7월 6일 오후 2시 서울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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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제약] 건강한 삶을 사는 사람들 _ 정토마을 능행스님 편(2009년 5월).. 컨텐츠이미지 [ 등록일 : 2012-02-20 , 조회수 : 1,3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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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통해 느끼는 부처의 가르침(2007년 3월 오마이뉴스) 컨텐츠이미지 [ 등록일 : 2012-02-20 , 조회수 : 1,4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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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통해 느끼는 부처의 가르침            그 어떤 수행보다 아름답다"                  [사제가 만난 비구니 스님] 임종자들의 어머니, 능행   신부, 목사, 불자인 시민기자가 타 종교 성직자들을 만나 그들의 삶과 종교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를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기사를 통해 타 종교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종교의 진정한 의미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 순서로 최종수 시민기자(전주 팔복동성당 주임신부)가 임종자들의 어머니로 불리는 비구니 스님 능행(정토마을)을 만났습니다.                 ▲ 임종자들과 그 가족들의 어머니로 통하는 능행스님이 마치 엄마와 아이처럼 환자와                 담소를 나누고 있다.   ⓒ 최종수     개신교, 불교, 원불교 성직자들을 두루 만났지만 비구니 스님은 개인적으로 만나본 적은 없다. 고등공민학교 동기동창 중에 한 명이 비구니가 되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만나지는 못했다. 사제가 비구니 스님을 만나러 가는데 어찌 설렘이 없으랴. 노총각이 첫선을 보러 가는 마음이 이런 마음일까?    인생을 아름다운 동행이라고 말한다. 누군가에게 아무런 욕심 없이 동행이 되어주는 인생이 아름답다는 말일 게다. 누군가에게 동행이 되어주는, 그것도 임종(臨終)자들의 동행을 자처하고 나선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러 갔다.    충북 청원군 미원면 대신리. 구녀산을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모퉁이에 '정토마을' 표지판이 반갑게 인사한다. 무덤가 할미꽃처럼 낮게 자리한 정토마을, 호스피스센터인 그곳에는 할미꽃처럼 온화한 스님과 고달픈 인생의 소풍 길을 끝내고 떠날 채비를 하는 임종자들과 가족들이 함께 살고 있다.    죽음을 앞둔 '시한부'의 사람들. 임종자들을 돕고 있는 비구니 스님 능행은 이들에게 어머니로 불린다. 19일 오후 2시 30분, 서울에서 막 돌아온 그는 늦은 점심식사 중이었다. 직원의 안내로 법당에 들러 큰절을 올리고 사무실로 가는 도중에 능행을 만났다. "스님, 사랑했던 사람은 없었는지요"              ▲ 스님이 녹차를 따른다.  ⓒ 최종수     "먼 길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죠."   전화의 자상한 목소리처럼 그의 첫 인상은 큰 누님 같다. 덥석 잡은 손이 따뜻한 것처럼 눈빛이 참 맑았다. 임종자들의 절망과 희망, 슬픔과 기쁨으로 닦아놓은 눈빛은 하늘로 열린 영원의 창 같았다. 오래 들여다보면 한 사람의 영혼이 비칠 것만 같았다. 응접실에서 다기를 꺼내 녹차를 준비하던 스님이 말을 건넨다.    "살과 살이 부대끼고, 인간과 인간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정토마을에서 인욕(忍辱·참기 어려운 것을 참아내며 남이 하기 힘든 선행을 하는 것)수행이 굉장한 수행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저의 화두는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상대적 빈곤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가난한 사람이 있나요?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많지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인 상대적 빈곤감이 너무 크다 보니까 자살, 우울증, 가정파탄 같은 많은 사회문제가 양산되는 것 같아요."  "제가 이목구비가 확실하고 눈썹도 송충이 눈썹이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신부가 되었을까?'하는 질문을 가끔 받습니다."   "저에게 그런 질문을 하고 싶은 것이지요."  "하하하"(함께 웃음)   - 스님, 사랑했던 사람은 혹시 없었는지요.   "제가 완벽하게 사랑하는 사람은 석가모니 부처님밖에 없어요. 그분만을 한결같이, 수억겁을 다시 살아도 부처님만 사랑할 것입니다. 의심 없이 항구하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제 사랑의 모든 것은 부처님입니다.   - 황순원의 아시지요. 중학교 땐 짝사랑하는 여자 친구가 있었고, 고등학교 다닐 때는 통학하는 여학생에게 쪽지 한 장 보낸 적이 있었어요.   "왜 소나기 같은 사랑이 없었겠어요. 근데 부처님을 알고 난 이후 그런 사랑이 부질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부처님이 제 사랑의 전부입니다. 일생에서 가장 잘 선택한 것이 출가입니다. 제가 후배 스님들에게 가장 축복된 선택이라고 말합니다. 지금 세상은 좋은 것이 너무도 많아 성소자가 줄고 있지요. 불편하고 힘든 일을 싫어하는 젊은이들에게 매력이 없는 거지요."   능행은 애초에 개신교 신자라고 했다. 의외였다. 그는 광적인 교회 분위기에 회의감을 느끼던 와중에 불경 소리를 듣게 되면서 불교에 매료되었다고 했다.       개신교 신자였다가 스님이 된 까닭?      ▲ 어린 아이처럼 웃는 스님.  ⓒ 최종수     "저의 신앙의 뿌리는 개신교입니다. 중·고등학교는 천주교 재단인 거제도의 해성중·고를 다녔습니다.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천주교 학교였지요. 스물다섯 살까지는 개신교 신앙 속에서 살았는데, 특별한 체험은 없었어요. 하지만 제가 워낙 열정적이라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초파일 즈음에 거리를 지나가는데 음반판매점에서 불경 소리가 나는 거예요. 처음 듣는 그 소리. 지나가다가 살짝 들었던 그 소리와 내가 합일이 된, 고압선에 감전된 듯한 그 순간 걸어갈 수가 없었어요. 제 전 존재를 흔들어 버린 것이죠. 처음 들어본 그 불경이 저를 사로잡아 버렸죠. 그 후로 교회에 앉아 있어도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 당시 부흥회가 한참 유행이었는데, 광적인 교회 분위기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어요. 회의감이 들수록 그 불경 소리가 떠오르고, 그럴수록 너무 너무 행복해 지는 거예요. '부모은중경 테이프가 다 늘어나 망가질 때까지 들었어요.    '야, 불교가 이렇게 심오하고 거룩하구나.'    그리고 나서 불교신문을 구독하면서 불교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그 당시에 성철스님이나 법정스님 등 몇 분의 책들을 읽으면서 불교가 참 정적이고 고요하고 자유롭다. 참 멋지다. 행복하게 사는 것보다 멋지게 살고 싶은 열망이 가득한데, 불교 스님들이 그렇게 인생을 멋지게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법정 스님의 산문집을 샀어요. 책을 읽으면 제가 불일암에서 법정스님처럼 차를 다리고 예불을 드리고, 달빛이 내리고 후박나무 열매가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거예요. 진짜 이렇게 살다가야지 이렇게 멋지게 살다가야겠다. 나도 출가해야지. 스님만 되면 성철스님 법정스님처럼 다 그렇게 살 줄 알았어요.   바람처럼 물처럼 구름처럼 끊임없이 흐르는 불교, 개신교에서 펄쩍 뛰어서 불교로 뚝 떨어졌어요. 아무것도 모르고 떨어졌는데 현실은 그게 아니었어요. 스님들이 굉장히 많은 줄 알았어요. 저 같이 초짜 스님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공부가 끝난 스님들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는 줄 알았어요.    병원이나 어려운 곳엔 수녀님과 신부님, 선교사나 목사님들만 넘치는 거예요. 스님들을 찾아볼 수가 없는 거예요. 지금은 스님들도 여러 분야에서 잘 하고 있지만 20년 전엔 불교계는 거의 전무했어요.    너무도 실망하고 절망하면서 딜레마에 빠졌어요. 그럼 그 스님들 다 어디 갔는가. 다 뭐 하나. 스님들은 거의 선방에 있는 거예요. 나름대로 열심히 수행하고 있지만 중생의 고통스러운 현장에는 스님들이 없는 거예요. 부처님은 살아 있지 않는 거예요. 스님을 만나려면 선방에 찾아가야 하는 거예요.   어느 날 보살님을 따라 말기 암환자 병문안을 갔습니다. 서울에 있는 큰 천주교 병원이었어요. 병실에 늘어섰는데 스님들이 그 병원에 엄청 많은 거예요. 그래서 내가 물었죠. '이 병동엔 왜 이렇게 스님들이 많아요'라고 묻자 간호사들이 웃으면서 스님들이 아니라 항암제를 맞고 머리카락이 다 빠져서 그렇게 됐다고 설명하는 거예요.   그런 환자를 처음 봤는데 부처님의 고행상 같았어요. 눈은 심리 밖으로 쑥 들어가고, 몸은 삐쩍 말라가지고 링거 몇 개씩 달고 있는 거예요. 무섭고 두려웠어요. 근데 그 병원에 스님이 없는 거예요. 천주교와 개신교 신자들은 임종 때 성직자들의 보살핌을 받는데 불교 신자들은 그렇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때 '소외' 라는 것이 뼛속까지 파고들더군요. 그 이후로 질병과 고통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임종 앞둔 스님과 손잡고 한 약속   - 그게 임종자들의 병원을 설립하게 된 동기군요.   "직접적인 동기는 따로 있어요. 몇 년이 흘러 말기 암환자 스님을 병문안 가게 되었어요. 그 환자 스님이 제 두 손을 잡고 소원이 있다는 거예요. 스님들이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는 병원을 설립해 달라는 거예요. 이미 숨이 목까지 찼는데 '병원을 세우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으면 눈을 감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 간절한 소원에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스님도 하늘에서 함께 기도해 주실 수 있다면 해 보겠습니다'라고 대답했지요. 서로 두 손을 꼭 잡으며 약속을 했고, 그 스님은 몇 시간 후에 편안하게 눈을 감으셨어요. 그 약속이 제 인생을 통째로 바꾸어버리는 숙명이 된거죠."   그 약속으로 능행은 한 해에 80~90명의 임종자들을 하늘로 보내는 스님이 되었다. 편안한 죽음, 스님이 있어 황천 가는 마지막 길이 행복했었노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 스님의 유언으로 인해 말이다.    - 호스피스병원을 하시면서 보람이나 깨달음이 많을 것 같은데요.  "이 일은 그 어떤 수행보다도 정말 멋진 수행인 것 같아요. 죽음을 통해 죽음 안에서 내가 부처님의 가르침과 정합을 이루고, 그 가르침을 자각해 가고, 내 삶을 성찰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수행은 없다고 봅니다. 멋진 수행자가 되겠다고 출가했는데, 그 뜻대로 멋진 수행의 삶을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해 줍니다. 특히 별로 아름답지도, 평안하거나 안락하지 않은 이 시설에서도 환자나 가족들이 행복해 하고 기뻐하고 감사해 해요. 그들의 삶이 붕괴되거나 파괴되기 직전에서 온전히 새롭게 거듭날 때, 가족이 화해하고 가족이 다시 새롭게 만들어질 때 기쁘지요. 무엇보다도 감사한 것은 떠나는 사람과 남은 사람의 관계가 찌꺼기 없이 온전히 아름답게 회복될 때, 부둥켜안고 엉엉 울며 서로를 용서하고 화해할 때 눈물겹도록 기쁘고 행복하지요."   - 기억에 남는 슬픈 일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가장 슬픈 일은 돈 때문에, 이 더러운 돈 때문에 가족이 붕괴되고, 돈 때문에 소외되고 싸우고, 돈 때문에 미워하고 원망하고, 죽을 때 눈도 못 감고, 또 돈을 많이 벌었는데 다 못 쓰고 죽는 것이 한이 돼서 죽지 못하고, 돈 때문에 겪는 중생들의 고통, 그것이 가장 슬프고 가슴이 아픕니다. 이 돈 때문에 일어나는 사건과 고통을 어떻게 완화시킬까 생각하면서 병원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국가가 해야 할 사회복지를 종교단체나 사회단체가 하고 있는 현실과 국가의 사회복지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국가가 빈민층 기초생활수급자에게 많은 혜택을 주고 있는데 중하층 서민들에 대한 대책은 거의 없어요. 저희가 경남 언양에 짓는 병원은 서민들을 위한 무료병원입니다. 운영은 후원금으로 하고 병원비는 저희 공동체의 후원으로 운영하려고 합니다. 돈 때문에 병원에 가지 못하는 서민들이 돈이 없어도 사회에서 버림받지 않는 세상도 있다는 것,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사실 서민 가족 중에 환자 한 사람이 생겨 투병하면 풍비박산이 나잖아요. 그런 서민들의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국가가 서민들의 의료복지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합니다. 국가의 복지시설에 들어갈 수 없는 서민들에게도 혜택을 주는 복지정책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습니다. 서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야 합니다. 그러려면 세금을 더 많이 거둬야겠지요."       돈에 미친 세상... 영성은 가난에서 시작              ▲ 정토마을 병실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는 스님   ⓒ 최종수     - 현재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문제 하나만 지적해 주시지요.   "한미FTA가 아닌가요. 우리 사회가 너무 급작스럽게 서구화 되는 성장일변도가 문제지요. 질적으로 천천히 성장해야 하는데 엄청나게 빨리 성장하는 것이 결국 우리를 병들게 할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의 덫에 걸려들면 안돼요. 일제 식민지는 36년으로 끝났지만 한미FTA는 그렇지 않잖아요. 우리의 목숨이 미국에 달려 있어요. 참 두려워요. 그 덫은 우리 세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식세대와 손자에 손자들에게까지 고통의 멍에를 물려주는 거 아니겠어요. 어떻게든지 막아야 되는 것 아닌가요?"   - 스님은 이 세상의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청소년 수련원에 가서 '하느님과 돈과 싸우면 누가 이길까? 물었더니 거침없이 '돈요'하는 거예요. 청소년들까지도 돈이 우상이 되어버린, 돈에 미친 세상이 되었어요."    - 그런 돈에 미친 세상과 종교는 어떤 관계가 있다고 보십니까?   "돈에 미친 세상이기에 종교의 역할이 더 크다고 봅니다. 모든 종교가 청정하고 맑아진다면 우리 사회가 맑아지고 깨끗해 질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영적으로 너무도 가난한 거예요. 종교지도자들마저도 영적으로 가난해지면 우리 사회는 희망이 없겠지요. 근데 영성은 가난에서 시작되지 않나요."   - 종교의 벽을 허물기 위해 구체적으로 하시고 있는 일이나 종교간의 일치를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종교의 벽은 원래 없죠. 단지 우리 마음의 벽, 사고의 벽만 존재하는 것이죠. 각자가 타인의 종교를 이해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절대라는 것이 참 위험합니다. 이것은 절대고 저것은 절대가 아니라는 것은 편견이죠. 이 편견이 인간을 고통에 빠지고 하고 사회를 혼란시키는 것이죠. 성직자들의 편견이 신자들에게 그대로 파급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성직자들의 편견은 더욱 무서운 거지요. 서로 조화를 이루어 이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것이 종교의 역할이 아닐까요? 죽어가는 삶을 돌보는 수녀님들과 신부님들, 목사님들과 교무님들과 잘 지내고 있습니다."       동행의 등불을 걸어주신 누님 같은 스님   - 스님이 어떻게 사시는지 보고 싶습니다.  "글쎄요. 조금 쑥스럽네요.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 멀리서 꽃만 보고 갈 수 없잖아요. 가까이 가서 꽃잎 속에 숨어 있는 향기도 맡아야 꽃구경 제대로 한 것이 아닐까요?  "죽음의 현장에 무슨 향기가 있겠어요."   - 아, 스님 한번만 보여 주세요(코 먹은 소리로 애교를 부린다). 멀리 전주에서 눈썹을 휘날리며 왔는데요.  "하하하"(함께 웃는다.)   "그래요. 출생으로 시작한 가장 아름다운 인생의 꽃, 제가 이곳에서 인생이라는 아름다운 꽃향기를 뼛속까지 느끼며 살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동백꽃이 나무에서 시들지 않고 뚝뚝 통째로 떨어지잖아요. 그 동백꽃 낙화와 같은 죽음을 통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봅니다. 임종하는 순간, 풀잎에 맺힌 새벽이슬 같은 눈빛에서 가장 평화로운 영혼을 느낍니다."   능행은 간호실을 지나 일흔살 정도 돼 보이는 병자가 누워있는 침대에 이르자마자 마치 어머니가 병석에 누워있는 아이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 하듯이 말을 건넨다.   "평안하셨어요."  "예."  "오늘 눈빛이 참 맑아 보이네요."  "스님이 기도하고 가신 뒤로 안정이 되는가 봐요."  "그랬어요. 참 잘 했네요."  "하실 말씀이나 도와드릴게 있으면 말씀하세요."  "치료비가 걱정이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스님이 돈이 많잖아요. 어때요. 누님이 곁에 있으니까 좋지요?"  "큰 누님이라 그런지 어머니 같아요."  "큰 누님이 좋아요?"  "근데 제가 큰 누님께 잘해 드리지 못했어요."  "아니에요. 고향에 오갈 때마다 시골에 시집가서 고생한다고 꼭 들렸어요.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누님이 곁에 있으니까 참 좋네요."  "동생만 바라보면 눈물이 나서 죽겠네예."  "어머니 같은 누님이 곁에서 시중을 드니까 동생이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스님의 왼 손은 어느새 동백꽃 떨어지듯이 뚝뚝 눈물을 떨구는 환자 누님의 등을 쓰다듬고, 오른손은 환자 무릎을 만져주고 있다. 왜 시한부 임종자들과 그 가족들의 어머니라고 불리는지 알 것 같다. 죽음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동행의 향기가 콧등을 스치며 눈시울을 뜨겁게 달구고 만다.    등을 쓰다듬는 스님의 왼손이 눈물을 훔치는 내 등짝을 토닥이는 것만 같다. 아름다운 동행은 이렇게 눈물 속에서 피어나는 향기가 아닐까. 마음과 영혼의 불을 밝히는 스님의 열정이 어두운 세상에 불을 밝혀야 하는 사제의 가슴에도 맑은 등불 하나 걸어놓았다. 아름다운 소풍처럼 이승의 삶을 마치고 저승으로 떠나가는 길을 밝혀주는 아름다운 동행의 등불이다.                                              최종수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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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새 다섯명을 보냈어… 징해 징해, 돈에 미친 세상(2006년 11월 한겨레).. [ 등록일 : 2012-02-20 , 조회수 : 1,6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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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원군 미원면 호스피스촌 ‘정토마을’   지난 18일 충북 청원군 미원면 대신리. 구녀산 좁은 산길을 따라 100미터 가량을 오른다. 물기가 잦아든 낙엽의 빛깔들이 제각각이다. 죽어가는 모든 것들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름다운 것들과 채 작별도 하기 전에 금세 터널을 빠져나온 듯 푸른 하늘이 툭 터진다. 그 아래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호스피스촌 정토마을이 있다. 사나흘이 멀다 하고 사람이 죽어 나가는 곳이다. 그래서 단말마의 비명으로 고통스러울 법한 곳이다. 그런데도 어찌 이토록 아늑하고도 예쁠까.   그러나 이곳에선 최근 일주 새만 해도 다섯 명이 죽어 나갔다. 잠시 뒤 정토마을 원장인 능행 스님의 모습이 보인다. 양말도 신지 않았고, 얼굴엔 피로가 가득하다. 입가에 부르튼 상처가 자다가도 일어나 맨발로 달려가 죽어가는 이의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면서 날을 하얗게 밝히는 그의 여정을 대신 말해주고 있다.   죽음은 늘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의 취침과 기상 시간을 맞춰주는 법이 없다. 죽어가는 사람과 작별하면서 그 고통과 몸부림하다 보면 양말을 갖춰 신기는커녕 밥 한술 먹을 새도 없는 때가 많다.돈만 보고 달렸던 젊은이     사랑도 안락도 올줄 알았다     몸부림친 세월에 잃어 버린건      삶과 가족과 건강     …      정토행 염불소리 구슬프다      스님은 또 청주시내 장례식장을 향해 황급히 차에 몸을 실었다. 전날 이곳에서 숨을 거둔 한 젊은 망자의 입관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다. 30대 후반의 고인이 정토마을에 온 것은 4개월 전이었다. 췌장암 말기였다. 그는 지금껏 장가도 가지 않고 건축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고 했다. 돈만 벌면 여자도 생기고, 집도 생기고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행복할 것으로 생각했단다. 써보고 싶은 돈도 못 써보고 돈을 모아 이제 어느 정도 살게 됐는데 말기 암이라니 웬 날벼락이냐고 했다. 돈만 벌기 위해 몸부림쳤기에 형제들과 관계도 소원했다. 6남매의 막내인 그는 늘 형과 누나들을 기다렸지만, 가족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의 가족들도 그처럼 모두 돈을 버느라고 바빴다. 그는 기다림에 울고 외로움에 떨다가 임종을 맞았다.   “징해. 징해. 이 세상이...”   달리던 차에서 창밖을 보던 스님이 신음처럼 말을 뱉었다. 죽음 자체에 대한 한탄보다 오직 돈만 보고 달리다 정작 정말 소중한 사랑을 놓쳐버린 이들의 삶과 가족이 죽어가는데도 돈 버느라 바빠 올 수 없다는 사람들, 귀찮은 일은 죽어도 싫다는 현대인들의 개인주의와 메마른 마음에 대한 절규였다.   “세상 사람들이 다 돈에만 미쳐가고 있어요. 그 돈이 결국 우리를 미치게 하는 줄도 모르고.”   사흘 전에도 개인택시를 하며 돈만 벌며 장가도 가지 못했던 총각이 세상을 떴다. 요새 그런 젊은이들을 잇달아 보내면서 스님의 한숨도 더욱 커졌다.   장례식장에 도착해 입관실에 들어가자 하얀 천에 덮인 주검이 누워있다. 스님의 염불에 맞춰 염습사들이 주검의 몸을 닦고 손발을 한지로 싸기 시작한다. 이제 막 이곳에 도착한 50대로 보이는 한 여인이 울다가 염습사를 향해 “우리 막내 마지막 가는 길인데 좋은 천으로 싸주지 왜 종이로 싸느냐”며 화를 낸다. 한지로 싼 뒤 옷을 입히게 되어있다고 해도 막무가내다.   스님이 여인에게 “(고인과) 어떻게 되느냐”고 묻자, “큰누님”이란다. 스님은 “○○씨가 얼마나 큰누님을 기다렸는데…”라며 뭔가를 말하려다 이내 입을 다물고 만다. “살아서 한 번이나 와보지 웬 뒤늦은 소란이냐”는 말을 하고 싶었을까. 그의 염불과 목탁소리만이 마른 장작처럼 말라버린 주검 주위로 더욱 구슬프게 울려퍼졌다.  ‘임종의 고통’ 등지려다 사흘을 울고 돌아왔죠    ‘정토마을’ 원장 능행 스님은 출가한 지 5년쯤 지난 30대 중반에 한 불자의 남편 병문안을 갔다. 그전엔 병원 문턱도 밟아본 적이 없던 그는 “이곳에 웬 스님이 이렇게 많으냐”고 놀라 물었다. 그러나 그들은 스님이 아니라 지독한 항암제를 맞아서 머리가 빠진 말기 암 환자들이었다. 지옥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바로 그곳이었다.   ‘부처님 고행상’을 보는 듯 말라붙은 말기 암 환자의 모습에 충격을 받고 뒤돌아서는 그를 누군가가 불렀다. 자기 어머니가 불자인데 기도 좀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번엔 이 사람 저 사람 할 것 없이 “저도요, 저도요” 하면서 달려들었다. 병원에 신부님, 수녀님, 목사님은 늘 찾아오는데 스님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신자들 덕분에 절집을 짓고 밥을 먹고 살아가면서 정작 신자들이 병들고 죽어갈 때는 그들 곁에서 돌보고 지켜봐주는 스님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게 기가 막히고 죄송했다.    “다시 나면 고통받는 중생 곁에” 눈감지 못한 스님의 회한 사무쳐…   돈 없어도 편히 죽을 쉼터 마련 “잘 죽는 길은 잘 사는 것”    얼마 뒤 한 가톨릭 수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임종을 앞둔 한 남자 환자가 아무래도 스님인 것 같은데 일체 대꾸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환자는 20년 넘게 선방에서 수행만 해온 스님이었다. 그는 “내가 지금까지 중생들이 주는 은혜로 살아가면서도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데, 무엇을 바랄 수 있겠느냐”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다시 태어나면 절대 그렇게는 살지 않을 텐데 이제 늦었다”는 것이었다. 머리와 수염과 손발톱까지 깎고 목욕을 시킨 뒤 무릎에 뉘어 자장가를 불러주던 능행 스님에게 그 비구 스님은 “불자가 1천만이나 되는 불교인들에겐 병원 하나가 없다”며 “스님들이 편히 죽어갈 수 있는 병원 하나 지어 달라”고 애원했다.    능행 스님은 “어떻게 저 같은 중이 병원을 짓겠느냐”며 고개를 흔들었다. 비구 스님은 임종 징후를 보인 지 이틀이 지난 뒤에도 숨을 놓지 않은 채 “그 약속을 듣지 않고선 갈 수 없다”고 버텼다. 견디다 못한 능행 스님은 “그럼 스님께서 죽어서라도 저와 함께 그 일을 해주실 수 있느냐”고 묻자 비구 스님은 “그러마”면서 능행 스님의 손을 꼭 쥔 채 눈을 감았다.   그렇게 비구 스님을 보낸 지 2년 만에 스님은 돈을 탁발해 땅을 사 이 마을로 들어왔다. 그러나 “말기 암 환자들이 웬 말이냐”는 마을 사람들의 거부와 시위와 민원으로 3년 내내 시달려야 했다. 더구나 돈이 없어도 편히 죽을 수 있는 곳을 만들겠다는 서원으로 이 마을을 만들었지만, 죽음의 고통을 지켜보는 것도, 이들을 돌볼 돈을 탁발하는 것도 너무 힘에 부치기만 했다.    5년 전엔 서랍 속에 이별의 편지를 써놓고 아무도 몰래 이곳을 떠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마을을 벗어난 순간부터 3일 내내 울다가 그래도 눈물이 그치지 않자 마을로 돌아왔다. 그때 한 할머니 환자가 “어디로 탁발 갔는데 이렇게 늦게 오노? 스님 보고 싶어서 눈 빠지는 줄 알았다”고 하는 말을 듣고 그는 통곡하며, 수행자는 고통 받는 중생 옆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스님은 비구 스님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난 9월부터 울산 울주군 상북면에 관자재요양병원을 짓느라 매일 발이 부르트도록 탁발을 다니고 있다.   그런데 입관식을 마치고 돌아온 날 깊은 밤 스님의 방에서 눈물 젖은 스님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를 도와온 한 비구니 스님이 이번 동안거(겨울 90일간 참선기간) 때 선방에 들어가겠다고 하자, “스님들이 지키지 않으면 누가 지키겠느냐”며 “곁에 있어달라”고 울며 호소하고 있었다. 한 정토마을 식구는 “일반 자원봉사자들도 이곳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 힘이 필요한 곳이라며 더욱더 도울 마음을 내는데, 스님들은 대부분 임종하는 모습을 한두 번만 보면 놀라서 도망가 버리곤 해 원장 스님의 상처가 너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전화가 끊긴지 몇 시간이 지나도록 그날 밤 능행 스님의 방에선 흐느낌이 그치지 않았다.청원/글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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