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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삶들이 모여 사는 ‘정토마을’ 능행 스님의 베푸는 인생(2005년 12월 .. 컨텐츠이미지 [ 등록일 : 2012-02-20 , 조회수 : 2,1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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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삶들이 모여 사는 ‘정토마을’ 능행 스님의 베푸는 인생        “평화로운 죽음을 맞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모두들 ‘어떻게 하면 좀더 잘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요즘,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는가’란 화두를 던진 이가 있다.   호스피스 수행을 통해 수많은 죽음을 함께한 능행 스님. 보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죽음을 위해 살아 있을 때부터 죽음을 준비하라고 권한다.   충북 청원군 구녀산 자락 정토마을, 말기 암 환자를 비롯해 평화로운 죽음을 기다리는 이들이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간이역으로 삼은 보금자리에 도착했을 때의 첫 느낌은 넘치는 생명력이었다. 본관 앞 초록빛 잔디 정원 앞에 흐드러지게 핀 들국화가 가장 먼저 객을 반겼고, 곳곳에는 이제 막 꽃잎을 피운 듯한 꽃들이 탐스럽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잠시 후 모습을 드러낸 능행 스님의 모습에서도 고요한 활기가 넘쳐흘렀다.  천주교 등 여러 기관에서 호스피스 교육받다  “죽음 보따리는 혼자 싸기 힘들잖아요? 혼자 싸기 힘든 보따리를 함께 싸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 바로 정토마을입니다. 죽음을 돌보는 일은 사실 특별한 일은 아니에요. 우리 모두가 함께 준비해야 하는 일이지요.”   ‘죽음’이란 단어를 이야기하면서도 스님의 목소리와 표정은 전혀 흔들림이 느껴지지 않았다. 죽음이 삶의 또 다른 모습으로 이야기되는 것, 그래서 슬프기보다는 인간이 겪어야 할 여정으로 여겨지는 것, 이것이 능행 스님이 환자들과 살아가고 있는 정토마을에서 느껴지는 생명력의 근원인 듯했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능행 스님이 처음 죽음을 목도했을 때의 기억은 고통이자 충격이었다고 한다.   “한 신도의 병문안을 간 병원에서 처음으로 죽음의 순간을 지켜봤습니다. 그때까지 전 고통이 무엇인지 몰랐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죽음은 고통스러운 것이었어요.”   죽음 앞에서 고통으로, 혹은 좀더 살고 싶어서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본 후 스님은 무언가에 이끌리듯 부산의료원 행려병동을 비롯한 소록도, 충북 음성 꽃동네를 찾아다니며 자원봉사 수행을 했다. 죽어가는 이들의 모습은 거의 비슷했다. 살아가면서 부질없이 부렸던 욕심을 후회하는 이, 좀더 사랑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이, 앞만 보고 달려온 삶을 후회하는 이….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능행 스님의 화두는 한 가지였다.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인 죽음이 이리도 고통스러운 일인데 왜 우리는 살아가면서 죽음을 준비하지 않을까? 살아가는 일에는 기를 쓰고 작은 일도 준비하면서 왜 죽음을 준비하는 일은 꺼리는 것일까?’   능행 스님의 이 화두는 자연스럽게 호스피스 교육으로 이어졌고, 스님은 천주교를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 호스피스 교육을 받으며 죽음을 배웅하는 자세에 대해 공부를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불교계에는 마땅히 호스피스 교육을 받을 만한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1997년 어느 날 폐암으로 죽음의 기로에 선 한 스님을 배웅하는 길에 능행 스님은 앞으로 자신이 정진해야 할 과제를 부여받게 되었다. 그 비구 스님은 평생을 선방에서 수행만 하다 마지막 가는 길 몸 누일 곳 하나 마련하지 못하고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호스피스 시설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 비구 스님은 능행 스님에게 유언처럼 한마디를 남겼다. 스님들이 편히 죽을 수 있는 병원 하나 지어달라는 간곡한 부탁이었다.   비구 스님의 부탁은 능행 스님의 마음에 비수처럼 꽂혔고, 그 후부터 스님의 유언을 따르겠다는 마음으로 백방으로 노력한 결과 2000년 청원군 구녀산 자락에 정토마을을 건립해 종교를 초월한 호스피스 수행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정토마을을 건립하기까지는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기금을 마련하는 일에서부터 마을 주민들의 반대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하지만 능행 스님은 비구 스님과의 약속, 더 나아가 고통스런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병자들을 위한 보금자리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뜻을 굽히지 않았다.   “저에게 정토마을은 삶과 죽음이 굽이치는 수행처입니다. 또 준비 없는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에게 죽음을 준비하게 하는 호스피스 일은 저에게 수행의 길이에요. 고통 앞에 있는 이들에게 부처님의 자비를 베푸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현재 정토마을에 머물고 있는 환자는 10여 명.말기 암 환자를 비롯해 뇌출혈 환자 등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이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남은 생을 조용히 마무리하고 있다.   “정토마을은 불교계에서 건립된 최초의 호스피스 마을이긴 하지만 스님이나 불교 신자만을 위한 곳은 아닙니다. 또 암 환자뿐만 아니라 죽음을 목전에 둔 도움이 필요한 이라면 누구든 무료로 머물 수 있어요.”   스님의 말씀처럼 이곳에 머물고 있는 이들은 저마다 오게 된 사연도, 병명도 다르다. 다만 공통점이 있다면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죽음을 기다리기보다는 남은 생을 값지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품고 있는 이들이다. 스님이 떠나보낸 많은 사람들 중 특히 결혼을 앞둔 처녀의 사연이 가슴 아프다.    갑자기 급체한 것 같아 병원에 갔다가 급성위암 말기로 살아갈 날이 2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선고를 받은 한 처녀는 약혼자의 손을 잡고 아버지와 함께 정토마을을 찾아왔다. 결혼을 불과 몇 달 앞둔 상태였다. 병원에서도 이미 치료를 포기한 상태라 물 한 모금을 넘기는 일조차 고통스러워했다. 이 모습을 지켜본 그녀의 어머니는 “돈이면 다 되는 이 세상에 왜 돈을 준다고 해도 저 아이를 못 살리느냐”며 살려달라고 통곡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간호하는 엄마를 위로했다.   “엄마! 아프지 마, 나는 어떻게 해? 선생님, 우리 엄마 주사 좀 놔주세요.”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느낀 그녀는 떠나기 전 이런 말을 남겼다.   “죽은 후에 여자로 태어나고 싶어요. 그리고 여섯 살이 되면 스님에게 와서 스님 제자가 될래요.”   죽음에 다다른 순간 정신을 놓으면서까지 그녀는 아미타불을 부르며 떠나갔다. 극락세계로 가고자 하는 마지막 안간힘이었다.   4개월 전 정토마을에 들어온 지눌 스님은 폐암 말기다. 그는 현재 한글로 된 을 필사하면서 투병하고 있다. 스님이 처음 폐암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곳은 보건소였다. 큰 병원에 가보라는 말에 따라 병원을 찾아 검사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폐암 말기라는 최종 판정을 받았을 때 스님의 마음에 든 생각은 ‘왜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일이…. 나만은 비껴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하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딱 이틀간이었다고 한다.   “오히려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저는 만약 가족들이 본인에게 암이라는 걸 알리지 않은 경우가 있다면 빨리 알리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래야 살려는 의욕을 가질지 죽으려는 의욕을 가질지 본인이 결정할 수 있으니까요.”   지눌 스님이 현재 가장 바라는 것은, 남은 시간 동안 맑게 깨어 있는 것. 그리고 자신은 이미 암 판정을 받고 고통의 시간을 보내지만 다른 이들만큼은 고통 없는 삶을 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제가 겪고 보니 암은 무척 고통스러운 병입니다.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요. 수행하고 일하던 시절이 무척 그리울 때가 많아요. 하던 일을 못하고 갑자기 한가해진다는 것은 무척 서러운 일이더군요. 그러니 저 말고 다른 분들은 이런 고통, 서러움 안 느꼈으면 좋겠어요.” 소풍 전날 밤 같은 설렘으로 죽음을 맞이했으면...    환자들을 간호하는 일은 단지 호스피스 활동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간호사와 주치의가 상주하며 환자들과 함께 병에 맞서 싸워나가고 있으며,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환자에게 필요한 일을 도와가며 사랑을실천하고 있다. 그렇기에 정토마을에는 죽음의 어둠보다는 고요한 활기가,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기운이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토마을에서 한 해에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는 이들이 100여명에 이를 정도. 능행스님은 이들을 맞이하고 보내며 고통스러운 죽음을 함께하고 있다. 그동안 능행스님의 배웅을 받은 이들은 무려 1,000여 명. 정토마을뿐만 아니라 스님의 배웅을 요청하는 곳이면 새벽이든 밤이든 어디든지 달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죽음을 경험해오며 스님은 처음보다는 죽음에 대해 조금은 초연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죽음을 대하는 일은 스님에게 고통이고 슬픔이어서 누군가 정토마을 간이역을 떠나 저승으로 간 날은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곤 한다.   "그동안 많은 죽음을 접하며 제가 느낀 것이 죽음의 모습은 살아온 모습과 닮아 있다는 거였어요. 어떻게 살았는지에 따라 죽어가는 모습도 다르다는 것이지요. 결국 잘 사는 문제와 잘 죽는 문제는 전혀 다른 일이 아니고 더 나아가 삶과 죽음 역시 다르지 않은 일이라는 걸 배우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말 속에서 10여년 전 처음 고통스런 죽음을 목도하며 '왜 우리는 죽음을 준비하지 않는가?'에 대한 답이 제시되어 있었다. '어떻게 하면 잘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이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인 셈이니 말이다.   정토마을에 머무는 환자들을 돌보는 일 외에 호스피스 교육에도 실혐을 기울여온 능행스님의 바람은 이 세상을 살다 떠나는 이들이 소풍 가기 전날 밤 같은 기분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 그러기 위해 환자들이 좀더 쾌적한 환경에서 남은 생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현재 정토마을은 공간이 좁아 한 방에 여러 명의 환자가 머물러야 하는 상황이라 능행스님에겐 가장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능행스님은 오래전부터 새로운 계획을 세워왔다. 새로운 계획은 보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호스피스 수행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었으며 이미 울산시 언양에 새로운 부지가 확정돼 계약을 앞두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새로운 계획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4억원 정도의 비용이 모자라 스님은 전국 사찰을 돌면서 탁발수행에 나섰다. 자금 마련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나선 길이다. 정토마을을 건립할 때에도 많은 난관이 있었지만 마음을 비우고 가고자 하는 길에 전념했을 때 길이 열렸었기 때문에 지금의 탁발수행이 결코 힘들지 않다.   능행스님과 정토마을에 머무는 이들을 뒤로하고 나오는 길, 활짝 핀 들국화가 다시 배웅을 했다. 들국화 사이로 가지런히 써 있는 글귀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삶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굳이 버려야 한다면 먼저 자기 자신을 버리세요.'   '나'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삶에서도 죽음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정토마을의 정신이 느껴지는 한마디였다. 거룩한 보살 자비행을 실천하고 계신 능행큰스님 이십니다.얼마전 한 도반스님의 권유로 읽게 된 스님의 책,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이별이지는 않게...'세상의 어려움과 고통을 모르고 수행자라는 이름을 거론하기엔 너무나 안이한 나 이기에한참을 멍하니 빈 하늘만 올려다 봤었다...마음은 한가득 하나 실천하기 어려울 터인데  이렇게도 거룩하게 삶의 한 조각을 남을 위해 헌신 하심이 너무나도 자랑스럽고 아름다울 뿐이었다... 취재 임현주(자유기고가)·사진 조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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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來生위해 ‘아수라 삶’서 벗어나야” (2005년 5월 6일 경향신문).. [ 등록일 : 2012-02-20 , 조회수 : 1,1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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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來生위해 ‘아수라 삶’서 벗어나야”     황사가 심하게 몰아치는 고약한 날인데도 충북 청원의 산자락에 포근히 자리잡은 ‘정토마을’은 참꽃(진달래)이 만발한 봄의 극락이었다.    어른키보다 더 큰 108염주가 매달린 정문에서 능행스님은 봄꽃보다 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불교계에 유일한 독립형 호스피스 시설인 이곳에서 스님은 벌써 6년째 열다섯 병상에 누운 중생들의 마지막 길을 따뜻하게 배웅하고 있다. 1,000명도 넘는 이들이 스님의 배웅을 받으며 사바세계를 떠났다. “이곳에서 차분히 자신의 마지막을 정리할 수 있는 사람들은 참 행복한 거예요. 아무런 준비없이 갑자기 떠나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어차피 누구나 한번은 죽어요. 언제 가느냐만 다를 뿐이죠.”   스님은 원래 법정스님의 책 ‘무소유’처럼 홀로 맑고 깨끗하게 살고 싶어 10여년전 충남 연기의 학림사로 출가했다. 이처럼 호스피스 시설을 떠맡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14년전 한 여신도의 암걸린 남편을 문병하러 간 인연의 끈이 스님을 이끈 것이다. 앙상하게 뼈만 남은 병자들이 그득한 병동에 들어서자 스님 주위로 불자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모여들었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도 무서웠는데, 그곳에 있던 불자 환자들이 ‘병원에 처음 오시는 스님’이라며 축원을 해달라고 잡아끄는데 충격을 받았어요. 목사님이나 수녀님들은 자주 오시는데, 스님들은 좀처럼 문병오지 않았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어요. 지금은 물론 많이 달라졌지만….”   능행스님은 며칠간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병자들의 얼굴이 떠올라 제대로 잠을 자거나 먹을 수도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마침내 ‘병자들을 위한 만행’을 결심했다. 당시만 해도 서울역에서 노숙자들을 강제로 기차에 태워 부산까지 내려보내던 시절이었다. 가장 많은 행려병자가 모인다는 부산역 근처와 부산의료원 행려병동을 비롯해 멀리 소록도,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수행삼아 3년간 자원봉사를 했다.          “꽃동네에서 저는 고통 속에서도 피워내는 희망과 사랑을 보았습니다. 팔과 다리가 썩어내리고 얼굴 근육만 살아있는 희귀병에 걸려 휠체어에 묶여 있는 한 병자는 담배를 피우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담배연기로 도넛을 만들어 보여주는데, 저도 모르게 미소짓게 되더군요. 그때 느꼈어요. 두손과 두발이 없어도 남에게 뭔가 줄 수 있구나! 남을 기쁘게 만들 수 있구나!”   이 세상에 한 생명도 가치없는 생명이 없었다. 한 생명이 바로 하나밖에 없는 우주라는 깨달음이 왔다.   “그처럼 소중한 한 우주가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습니다. 한사람도 죽는 모습이 같은 사람이 없었어요. 얼굴이 모두 다르듯이 죽음의 모습도 다 달라요. 그리고 그 죽는 순간의 모습은 바로 살아온 모습을 압축해 반영하는 거예요. 많이 가지고, 많이 누린 자일수록 더 생에 집착하고, 죽는 순간 끌려가기 싫어서 몸부림을 칩디다.”   1997년 즈음에 한 스님의 마지막을 배웅하다가, 그만 발목이 잡혔다. 그 스님은 ‘호스피스 시설을 만들어 많은 불자들이 마지막 길을 편안히 가게 해달라’고 유언 같은 약속을 하게 했다. 죽음을 배웅하며 힘이 들어 병까지 났던 스님은 그 약속 때문에 다시 모금을 시작해 정토마을을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네 주민들의 반대가 3년이나 계속됐다.   “2000년 8월부터 환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 분들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일을 도와드리다보니, 정말 잘사는 인생이 뭘까 싶더라구요.”   스님은 현대인들이 사는 모습은 어찌보면 ‘아수라’라고 했다. 자기를 낳아준 하늘 같은 부모보다 돈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바쁘다’는 핑계로 그 부모가 병들어도 제대로 한번 찾지도 않는 자식들이 그렇게 많을 줄 몰랐단다.          “사람이라면 그렇게 살면 안되지요. 한데 현대의 경쟁사회에서 정말 정신차리지 않으면 그렇게 짐승보다 못하게 살다 가게 되잖아요. 제발 초여름 복날 끌려가는 개처럼 죽음에 끌려가지 말고, 성인처럼 아름답게 죽음을 맞이하세요. 그래야 다음 생도 아름다울 겁니다.” 스님은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보며 틈틈이 써모은 글들을 ‘부처님 오시는 날’을 즈음해 펴낼 계획이다.                                                             이무경기자 lmk@kyunghyang.com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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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장애인복지관 강연 (2005년 3월 22일 제주일보) [ 등록일 : 2012-02-20 , 조회수 : 1,2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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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마을 원장 능행스님 강연… 19일 장애인복지관     지난 19일 오후 제주장애인종합복지관 강당에서 열린 능행스님의 강연은 ‘죽음’보다 ‘삶’에 많은 관심을 쏟는 현대인에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에 대해 화두를 준 시간이었다.   사회복지법인 춘강과 춘강정사가 제4회 불교사상 강연 대법회로 진행한 이날 강연 주제는 ‘불교적 호스피스의 의미와 실천’. 스님은 한국불교에서 처음 호스피스 시설로 충북에 세운 ‘정토마을’의 주인공. 스님은 수행자와 호스피스로서 ‘행복’에 대해 많은 시간을 썼다.   스님은 “죽음을 간접경험한 10여년 동안 왜 인간을 불행할까 생각했다”며 “많은 사람들이 죽음 앞에서 고통스러워 하고 외로워하는 걸 보고, 어떻게 해야 고통스럽고 아프지 않게 행복한 삶을 연출하면 살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스님은 “정신과 육체가 건강할땐 행복이 무엇인지 알 것 같으면서 모른채 산다. 더 오래살것 같은 기대감으로 오로지 사는 것에 매달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부분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후회없이 살았다’, ‘미련없다’라고 말하지않고, 다 떠나지 않으려고 발버둥친다”고 했다. 그는 “가장 고통스럽게 죽는 이들은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며 “돈버는 것을 삶의 중심에 두니, 잘 죽는법을 망각한 채 죽음을 맞는다”고 했다.   그는 “죽는 이들을 지켜보면서 어떻게 해야 행복하게 사는지 공부했다”며 “행복하기 위해선 ‘어떻게 사느냐’보다 ‘어떻게 죽느냐’에 더 관심을 둬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행복으로 나가는 길이 곧 수행이라고 생각한다”며 “수많은 호스피스를 보며 한 사람의 봉사가 세상을 얼마나 아름답고 평화롭게 가꾸는 힘이 되는지 알았다”고 했다.   그는 “이 세상의 행복을 창조하는 에너지 역할을 하는지, 당장 자신의 삶을 살펴보자”며 “살아 움직이지 않는 수행은 곧 죽음이며, 조건없은 사랑을 실천할 때 잘 죽을수 있다”고 보살행을 실천할 것을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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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마을 能行스님, 3년째 호스피스센터 운영(2002년 12월 17일 - 조선일보).. [ 등록일 : 2012-02-20 , 조회수 : 1,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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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마을 能行스님, 3년째 호스피스센터 운영      인간에게 가장 고통스럽고 두려운 일은 무엇일까. 누구나 맞이하는 죽음, 아무런 대책 없이 사랑하는 이들과 영원히 헤어져야 하는 운명에 놓인다면 어떤 심정일까.    충북 청원군 미원면 대신리 구녀산 중턱에 자리잡은 정토(淨土)마을은 현대의학으로도 어쩔 도리가 없어 ‘사형선고’를 받은 말기 환자들의 마지막 쉼터다.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는 안온한 마을,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최후 공간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평화스런 곳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마을 촌장(?)이 서른을 갓 넘겼음직한 해맑은 미소의 여스님이라는 사실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정토마을 원장 능행(能行) 스님은 이곳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14명의 환자들에게 어머니 같은 존재다. 약을 먹고 주사를 맞고 밥을 먹고 화장실을 갈 때도 능행스님은 그림자처럼 이들을 따라붙는다. ‘왜 이런 힘든 일을 하느냐’는 질문에 여스님은 여유로운 웃음을 지어보이며 짧게 대답한다.    “죽음을 눈앞에 둔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참다운 수행의 길이며 부처님의 마음입니다.”    경남 거제 출신으로 13년 전 출가한 능행 스님은 우연히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다 불교계에서도 호스피스 센터를 운영해야 된다는 사명감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불자들에게 호스피스 교육을 시키면서 말기암 환자들이 수용돼 있는 병실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죠. 처참한 상황에 몰린 환자들과 그들을 돌보며 고통스러워하는 가족들을 보면서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스님은 1999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신도들과 등을 만들어 팔아 마련한 돈을 밑천으로 땅을 샀고 백방으로 뛰며 후원금을 모아 2000년 10월 정토마을을 세웠다. 전담 간호사 3명과 자원봉사자 등 11명이 마을에 기거하며 암, 뇌졸중 등 불치병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1,500여명의 후원인들이 매달 1만원씩 보내주는 돈이 정토마을의 주요 수입원이다. 여기저기서 답지하는 특별 후원금과 스님의 강연료도 한몫을 한다. 물론 환자들에게 돈은 받지 않는다. 사망 후에는 시신을 가족에게 인도하고 보호자가 없을 경우 장례도 치러준다. 호스피스 정신에 따라 종교나 신분을 따지지 않고 여력이 있는 한 누구나 받아준다.    “호스피스 환자 1명은 일반 환자 10명과 같아요.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으로 마지막 가는 길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총체적 돌봄’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정토마을은 이곳을 ‘죽음의 병동’이라는 혐오시설로 간주하는 인근 마을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로 여러 차례 곤욕을 치렀다. 가족 돌보랴 주민들 설득하랴 능행 스님의 마음은 늘 편치 못하다.    “죽음은 누구나 맞이하는 평범한 진리인데 대부분 이것을 잊고 살지요. 보다 많은 분들이 호스피스 자원봉사에 동참해주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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