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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엄마 잃은 12살 소녀를 위한 기도 컨텐츠이미지 [ 등록일 : 2012-11-29 , 조회수 : 1,4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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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세상 등지고 홀로 눈감은 보살님 컨텐츠이미지 [ 등록일 : 2012-11-19 , 조회수 : 1,4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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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차가운 병실서 쓸쓸하게 눈감은 보살님 컨텐츠이미지 [ 등록일 : 2012-11-06 , 조회수 : 1,4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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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불치병에도 병원 건립 도왔던 도반 컨텐츠이미지 [ 등록일 : 2012-10-17 , 조회수 : 1,5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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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치병에도 병원 건립 도왔던 도반 2012.10.16 15:48 입력 발행호수 : 1166 호 / 발행일 : 2012-10-17 10년간 병원불사 발원하며 힘들때도 격려해주던 스님 스님 떠난 자리 아쉬움 커  자재병원 건축현장을 홀로 걸으며 가을 옷으로 갈아입을 채비를 하는 대지를 바라본다. 풍요와 결실의 계절이 어느새 성큼 다가왔음을 느낀다. 꿈을 가지고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온 사람들에게 가을은 희망의 계절이다. 저마다 가슴 속에 품은 희망을 성취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해 본다.말법시대를 살아가는 중생들이 자재병원을 통해 지혜·자비심을 기를 수 있다고 믿는다. 삶과 죽음의 순환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을 얻을 수 있는 수행처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자재병원이 온갖 번뇌와 갈등 그리고 욕망에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피안에 이르는 나침반 역할을 해 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건축현장을 돌고 또 돌았다.그동안 질병과 죽음으로 고통 받았던 스님들의 마지막 모습을 많이 봐왔다. 건강한 모습으로 수행할 수 있을 때와 그렇지 못할 때의 상황은 너무나 다르다. 우리 수행자들은 서로 말하지는 않지만 모두 알고 있다. 출가사문의 질병과 늙음, 그리고 죽음의 과정에서 전문성과 헌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존엄성에 대한 요구와 욕구는 도처에 존재하지만 함께 마음을 모아 승가의료의 질을 높이는 일에 동참하는 사람들을 찾기란 바다에서 진주를 찾는 것보다 어려운 것 같다.요즘은 성오 스님이 참 그립다. 우리는 청원 정토마을에서 10년을 함께 살았다. 스님은 불치의 질병에 시달리며 몸을 반쪽밖에 쓸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출가사문의 역할을 다 해내주었다. 내가 자재병원 건립을 위한 탁발에 나가면 스님은 법당 좌복에 앉아 간신히 몸을 지탱하며 왼손으로 목탁을 치셨다. 자재병원 건립을 위한 천일기도에 정성을 들이시던 나의 도반 성오 스님. 뇌혈관출혈로 기억력·인지능력을 상실했음에도 다시 한글공부를 해 ‘천수경’을 외우던 나의 도반은 반쪽밖에 사용할 수 없는 어눌한 몸이었지만 불사에 힘을 실어주었다. 힘들 때마다 가장 먼저 내 어깨를 토닥이며 웃어주던 것도 역시 성오 스님이었다.그런 도반이 내 곁을 떠났다. 그가 떠난 이후 자재병원 불사를 위해 기도해줄 스님 한 분 인연이 없다. 아마도 당신이 답답해 극락에서 기도를 해주고 계실 것만 같다. 오늘 아침에는 유난히 성오 스님이 그립다.추석 연휴라 고요하다. 환자들과 가족들의 소식이 궁금해 전화 한 통 넣어보고 혼자 호젓하게 자재병원 현장을 두 바퀴 돌았다. 햇살이 살갑게 내리쬔다. 나는 15년 전, 불치의 질병으로 죽어가는 사람과 그 가족들에게 힘이 되어 주리라 마음먹었다. 또 사람과 뭇 생명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이 되도록 기여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결정이 2012년 추석 아침 이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파도처럼 밀려와 내 몸과 마음을 덮는다. 곧 황금빛으로 물들어갈 가을들판처럼 자재병원 건립의 원이 그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것은 언제가 될까. 건축현장을 둘러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나는 이 병원 불사를 수행할 권리와 책임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온전히 수용한다. 나는 욕망하지 않는다. 그 무엇도 바라지 않는다. 단 나는 희망한다. 의료와 교육을 통해 이 세상 모든 중생들이 서로 공존하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힘이 될 것을 희망한다. 이 서원은 본래부터 내 안에 있었던 본원이며 구도의 길에서 스스로 선택한 고귀한 소임이다. 자재병원 기공식은 지난해 5월에 있었고 현재 공정률은 65%에 불과하다. 더딘 진행에 때로는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담쟁이 이파리 같은 정토마을 후원자들과 함께 벽을 넘어 뭇 생명이 서로 공존하는 숲을 이룰 것을 또 다시 다짐해 본다. 이 순간도 묵묵히 벽을 넘고 있는 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들이 있어 여기까지 걸어올 수 있었다. 그리고 의료와 교육에 뜻을 둔 사람들이 나와 같은 서원을 품고 있다면 이 길을 함께 걸어가면 좋겠다.능행 스님  정토마을 이사장 jungtoh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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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동생들 원망하며 쓸쓸히 떠난 거사님 컨텐츠이미지 [ 등록일 : 2012-10-04 , 조회수 : 1,5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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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들 원망하며 쓸쓸히 떠난 거사님 2012.10.01 23:29 입력 발행호수 : 1164 호 / 발행일 : 2012-10-03 농사지어 동생들 챙겼지만 부동산 개발계획 발표되자 땅지분부터 요구한 동생들  정토마을은 여러 가지 상황들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다. 세상 떠날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 그들을 전문적으로 돌보는 사람들, 그리고 힘이 되고 싶어 머무르는 사람들까지…. 저마다 입장은 다양하지만 아릿한 아픔과 아쉬움, 한없이 베풀고 싶은 사랑의 마음이 한데 어우러지며 오롯이 담겨 있다.민족최대의 명절 추석이다. 이맘때쯤이면 달처럼 둥근 얼굴 속에 깃들어있는 슬픔을 감추지 못했던 거사님이 생각난다. 췌장암 말기 67세 거사님의 슬픔이 내 기억 깊은 곳에 각인된 탓이리라.육남매의 맏이인 거사님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아들 둘과 딸 한명을 키워냈다. 땅에서 난 것들을 형제들과 나눠먹는 것이 유일한 재미였으며, 그것이 형제간 우의를 돈독하게 만드는 길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명절이 되면 객지에 살고 있는 형제들에게 농작물들을 보낼 생각에 힘든 것 모르고 추석준비를 하곤 했다. 아내도 거사님 의사를 늘 존중했으며 또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며 살았다.하지만 그 지역에 대한 개발계획이 발표되면서 모든 것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개발대상으로 땅값이 오르자 거사님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땅에 대한 분쟁이 일어났다. 동생들이 몰려왔다.“땅을 팔아 돈을 나누자.” “내 몫의 땅을 돌려 달라.” “법으로 해결하자.”고뇌는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져만 갔다. 결국 동생들은 거사님이 소중하게 가꿔온 땅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동생들에게 시달려온 탓에 육체는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깊은 병에 걸린 것이다.“태어난 집에서 평생을 살며 땅을 목숨같이 여기셨어요. 때가 되면 수확물들을 동생들에게 보내는 재미로 사셨고요.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땅, 팔겠다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으셨죠. 그런데 남편 동생들이 땅을 팔자고 그렇게…”흐느끼던 아내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동생들은 형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고 거사님은 그들 요구대로 땅을 팔면서 병이 났다. 그러던 어느 날 느닷없는 황달로 찾아간 병원에서 췌장암 말기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3개월 투병 끝에 모든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정토마을에 입소해 아내와 함께 마지막을 준비하는 여정을 보냈다.추석 사흘 전, 한 번도 고향 밖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았던 거사님은 정토마을 법당에서 조상님을 모셨다. 죽어서 조상님 얼굴 어떻게 뵐 수 있을지 염려하면서도 쌀은 햅쌀인지, 송편 속에는 무엇을 넣어야 하는지, 솔잎은 깨끗한 곳에서 채취했는지 묻고 또 물었다. 아내는 준비한 장거리를 손수 다듬는 내내 눈물을 쏟아냈다.늦은 밤, 거사님 병실을 찾았다. 창문에서 쏟아지는 달빛이 방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스님. 고향에서 보던 달이 여기도 있네요. 저는 일평생 고향을 떠나 살 거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이번이 제 인생 마지막 추석일 것 같아요. 병이 들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조상님 제사를 이렇게 지내도 되는 겁니까? 그리고 동생들이요. 그놈들이 어떻게 나에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지금도 괘씸하고 서운해 마음이 이렇게 아픕니다.”목소리에서 깊은 회한이 묻어났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가슴에 남은 것은 오직 동생들에게 입은 충격뿐이었다. 한평생 농사일만 해온 굵고 거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우는 거사님의 그 아픈 마음을 어떻게 위로해드려야 할지 몰라서 나도 울었다. 추석날 아침 몸을 힘겹게 움직이던 거사님이 결국 차례상에 꼬꾸라졌다. 부축을 받아 간신히 일어날 수 있었지만 마지막 순간은 결국 그렇게 오고야 말았다. 거사님은 추석을 지내고 1주일 후 고향으로 돌아가 숨을 거뒀고 농사짓던 땅이 내려 보이는 작은 언덕에 묻혔다.  용서되지 않는 동생들의 모습을 기억 깊이 묻고 떠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에 너무 깊이 중독된 것은 아닌가. 돈이면 부모, 형제, 친구를 아무렇지 않게 죽음으로 몰아갈 수 있는 세상을 살고 있다. 진정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은 무엇인지, 이번 추석을 계기로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능행 스님 정토마을 이사장 jungtoh7@hanmail.net [이 게시물은 정토마을님에 의해 2012-10-10 22:40:27 자료실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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